평양 원정에 쏟아지는 관심에 파울루 벤투(50)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내놓은 답변이다. 벤투 감독은 30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10월 10일과 15일 열리는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2, 3차전에 나설 태극전사 25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부동의 에이스 손흥민(27·토트넘) 황의조(27·보르도)를 필두로 팀의 주축을 이루는 유럽파 선수들이 고스란히 승선한 가운데 6월 끝난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주역 이재익(20·알 라이얀)의 깜짝 발탁이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월 투르크메니스탄과 1차전에서 벤투호에 처음으로 승선했던 김신욱(31·상하이 선화)도 다시 한 번 이름을 올렸고, 최근 소속팀 발렌시아에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데뷔골을 터뜨리며 출전 시간을 늘려가고 있는 '막내형' 이강인(18)도 발탁됐다. 부상에서 돌아온 남태희(28·알 사드) 김문환(24·부산)의 재발탁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이날은, 아무래도 명단 자체보다 평양 원정을 앞둔 벤투호의 준비 상황 쪽에 더 큰 관심이 쏟아졌다. 29년 만에 성사된 평양 원정. 분단 국가에서 치러지는 남과 북의 한 판 대결. 오는 10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3차전 북한 원정을 수식하는 표현은 이처럼 화려하고 비장하다. 29년 전 치렀던 1990년 통일축구대회가 친선경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남북전은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평양에서 치르는 A매치가 된다. 분단 이후 평양에서 치러지는 첫 A매치 원정 경기에, 복잡한 국제 정세와 민족 감정 등 경기 외적으로도 여러 가지가 얽혀있는 만큼 만인의 관심이 이번 북한 원정 경기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차분했다. 어쩌면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에서 온 외국인 사령탑이기에 가질 수 있는 여유일 수도 있다. 벤투 감독은 "한국 국민들이 이 경기에 대해 갖는 감정에 대해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자신이 집중할 것은 오직 경기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전에 앞서 경기가 하나 더 있다"고 말문을 연 벤투 감독은 "첫 번째 경기(2차전 스리랑카전)를 잘 치러야 두 번째 경기(3차전 북한전)도 있는 법이다. 스리랑카와 북한은 다른 유형의 팀이다. 우리를 상대로 어떻게 나올 것이며, 그에 어떻게 대응할지 끊임없이 분석하고 고민 중"이라는 말로 북한전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분명히 존재한다. 당장 경기까지 보름 가량 남은 상황이지만 북한과 소통이 원활치 않아 이동 경로 및 일정 등 경기 준비도 차질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그래도 벤투 감독은 "내 역할은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두 경기에서 승점 6점을 가져올 것인지, 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이라는 '통제 불능의 변수'를 앞둔 상황에 대해서도 "매 경기 발생하는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신경쓰기보다, 통제 가능한 변수들에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평양 원정을 앞둔 벤투 감독의 이 차분함은 그가 내놓은 명단에서도 드러났다. 같은 조에 묶인 투르크메니스탄, 스리랑카, 북한, 레바논은 모두 한 수 아래의 약체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 때부터 정예 멤버들을 소집해 방심 없는 경기를 치르고 있다. 이번에도 이재익의 깜짝 승선을 제외하면 예상을 크게 벗어나는 명단은 아니었다. 투르크메니스탄전 막판 교체투입돼 짧은 시간 동안에도 피지컬을 앞세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신욱은 한 번 더 기회를 얻을 것이란 평가가 많았다. 벤투호 황태자로 불리는 남태희는 부상에서 복귀한 만큼 재승선이 유력했고, 꾸준히 발탁되고 있는 황인범(23·밴쿠버)이나 이재성(27·홀슈타인 킬) 등도 마찬가지다. 손흥민, 황의조 등 확고한 주전 자리를 꿰어찬 선수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차 예선은 어디까지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과정'의 하나일 뿐, 선수들을 불러들여 관찰하고 시험해 '큰 그림'을 완성해가려는 벤투 감독의 의지는 그만큼 굳건했다.
그래서인지 몇몇 선수들에 대한 발탁 이유, 활용 방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벤투 감독은 막힘이 없었다. "이재익의 경우 연령별 대표팀 활약과 강원, 알 라이얀 등 소속팀에서 보여준 모습을 꾸준히 관찰해왔다. 대표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발탁했다"고 답한 벤투 감독은 "경쟁은 치열하다. 발탁했다고 해서 이재익이 출전 기회를 얻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3월 소집 때 이강인과 백승호(22·다름슈타트)를 불러들여 지켜봤던 때를 떠오르게 하는 답변이었다. 반면 남태희의 복귀에 대해서는 "아시안컵 때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웠다. 우리 팀에 많은 것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수로 오랜만에 대표팀에 합류하지만 문제 없을 것이라 본다"고 칭찬했고, 황인범의 꾸준한 발탁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그가 갖고 있는 장점을 다 말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농담을 섞어 극찬할 정도로 '당근'을 안겨주기도 했다.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질 두 번의 A매치를 앞두고 벤투 감독은 "첫 경기 스리랑카전을 잘 마무리한 뒤 북한전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벤투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벤투 감독에겐 북한과 치를 평양 원정 경기도 10월 A매치 2연전 중 '두 번째 경기'이자, '2차 예선 8경기 중 한 경기'에 불과하다. 평양 원정이 갖는 의미와 별개로 벤투호는 월드컵 본선 진출, 더 나아가 3년 뒤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는 목표를 향해 그저 직진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