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금자씨' 속 금자씨의 트렌치 코트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박찬욱 감독이 직접 자신의 영화 세계를 설명했다.
박찬욱 감독은 지난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센텀남대로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랫폼 부산 필름메이커토크 행사에 참석했다.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의 주요 시퀀스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박 감독이 꼽은 '친절한 금자씨' 속 시퀀스는 영화의 후반부 유괴범에게 복수를 하는 부모들이 등장하는 장면. 이에 대해 그는 "영화 전반부가 금자씨를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사실 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후반부에서 금자씨는 거의 조연이다. 뒤로 물러나서 구경하는, 또는 가끔식 개입해 조율을 해주는, 일종의 구경꾼의 위치로 스스로를 퇴각시킨다. 이것이 '친절한 금자씨'를 제가 구상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했던 요체"라고 설명했다.
극중 이영애가 연기한 금자씨가 입고 나오는 트렌치 코트에 담긴 의미 또한 이같은 설정의 연장선상이었다고. 박찬욱 감독은 "트렌치 코트의 깃을 내릴 때는 몰랐는데, 그것을 올려서 단추를 다 채우면 얼굴의 반을 가리게 된다. 부모들이 복수를 하는 장면에서 금자씨는 처음으로 단추를 채운다. 눈만 보인다. 금자씨가 단추를 다 채운 이 단계에서 그는 관찰자다. 어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박쥐'는 구상하고 찍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머릿속으로 햇볕도 쐬게 해주고물도 주면서 키워온 작물 같은 작품이다. 저로서는 유일하게 오래 걸려 만든 작품"이라며 '박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박쥐'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은 상현(송강호)이 태주(김옥빈)를 죽인 후 자신의 피를 먹여 뱀파이어로 만드는 신이었다고. 이에 대해 "이 장면이 가장 먼저 있었고, 이 장면에서 가지를 뻗어나가 영화를 완성했다. 씨앗과도 같은 시퀀스"라고 설명했다.
이 흡혈 장면을 두고 "영화 역사상 가장 궁극적인 키스신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정이, 광기 어린 애정이 한계까지 갔을 때 피가 하나가 된다. 일심동체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피로 합쳐지는 그런 궁극적인 단계까지 보여주고 싶었다. 상현이 자기 혀에 상처를 내 키스를 하고 태주가 마음껏 피를 흡혈하게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키스 중에 키스다. 궁극의 키스가 아니겠나"라고 이야기했다.
송강호에 대해 극찬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송강호는 천재적인 표현력을 가졌다. 아주 비천한 인물처럼 보였다가 또 어떤 때는 고귀한 인물로 돌변한다. 나는 배우에게 복합적인 캐릭터나 모순적인 연기를 하고 싶으면 그 감정을 동시에 품지 말라고 한다. 한꺼번에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이 때문이다. 다만 재빠르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중요한데, 송강호는 그런 지점에서 능력이 출중하다"고 전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 이외에도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캐스팅이 각 영화의 질감과 연관성을 갖는지에 대해 묻자 '올드보이' 최민식과 '복수는 나의 것' 송강호를 언급하며 답했다. "그런 급의 배우들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송강호가 '올드보이'를 하고 최민식이 '복수는 나의 것'을 했어도 충분히 훌륭한 연기를 했을 것"이라며 "결과론적일 수 있겠지만 역시 지금의 배우들과 영화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 배우에게 맞춰 찍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복수는 나의 것'을 구상할 때는 냉정하고 미니멀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 송강호는 사실 그런 배우라는 인식이 널리 있는 배우는 아니었는데, 송강호와 친해지면 그런 면을 가끔 보게 된다. 송강호가 냉정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휘둘리기 보다는 논리적이고 냉철한 면이 있다. 그런 순간의 송강호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이어 박 감독은 최민식에 대해서 "최민식은 물론 지적인 사람이지만, 엄청나게 다정다감하고 격한 성격이다. 불같이 뜨겁다. 누구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에 격렬한 표현을 동반한다"며 "'복수는 나의 것'이 현실 세계 한국의 느낌이 강한 영화였다면 '올드보이'는 신화적인, 독립된 세계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최민식이라는 배우가 가진 격한 감정이 원없이 터져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편, 박찬욱 감독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특별기획 '한국영화 100년사, 위대한 정전 10선'에 '올드보이'가 초청되며 부산을 찾았다. '올드보이'와 함께 '휴일(이만희 감독)' '오발탄(유현목 감독)' '바람불어 좋은날(이장호 감독)'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 '서편제(임권택 감독)' '돼지가 우물에 빠졌을 때(홍상수 감독)' '하녀(김기영 감독)' '바보들의 행진(하길종 감독)'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배용균 감독)' 등이 초청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