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퇴직연금’ 시장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저금리 칼바람 속에 퇴직연금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며 고객 이탈이 우려되자, 일제히 수수료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정작 직접적인 ‘수익률 높이기’에는 보수적이라서 고객의 볼멘소리가 나온다.
19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6대 은행(신한·KB국민·KEB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의 올해 3분기말 기준 직전 1년 평균 합계 퇴직연금(원리금보장) 수익률이 연 2%를 넘은 은행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확정기여형(DC) 기준에서 1위 은행인 신한은행만 봐도 직년 1년 수익률이 1.80%에 그쳤다. 개인형 퇴직연금(IRP), 확정급여형(DB)에서는 각각 1.85%, 1.68% 수준이었다.
이에 은행들은 너도나도 고객 이탈 막기에 분주하다. 퇴직연금 상품 특성상 입사 후 퇴직할 때까지 장기간 위탁 운용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수수료’다.
하나은행은 퇴직연금 운용관리 수수료를 추가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존 DB형 운용관리 수수료는 100억원 이상~500억원 미만 기준 0.23%였지만 변경 후에는 300억원 이상~500억원 미만에 대해 0.22%로 0.01%포인트 낮춰주는 방안이다.
수수료 50% 감면 대상도 늘린다. 기존 사회적 기업에 협동조합, 마을·자활기업, 사회복지법인, 사회복지시설, 보육시설도 추가하는 내용이다. 추가 인하조치는 금융당국 승인을 거쳐 15일부터 시행됐다.
국민은행 역시 지난 11일 퇴직연금 수수료 개편안을 발표하고 금융권에서는 처음으로 IRP 적립 금액을 연금으로 받는 고객에 운용관리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가입한 퇴직연금이 손실이 나는 경우에도 수수료를 전액 받지 않고, IRP 계약 시점에 만 39세 이하인 청년 고객과 장기 고객에 대한 할인율도 확대했다.
앞서 우리은행은 지난해 12월, 올해 2월에 이어 지난달 7일 3차례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현재 연금수령 고객의 경우 운용관리 수수료를 30% 감면해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2~4년 차 장기계약 고객의 경우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를 10~20% 인하해주며, 만 34세 이전 최초 입금 고객의 경우 운용관리 수수료 20% 할인해준다. 이외에 사회적 경제기업, 사회복지법인, 아이 돌봄서비스, 어린이집, 유치원 등 법인도 최대 50% 감면해준다. 신한은행도 지난 7월 1일부터 이익을 얻지 못한 IRP 퇴직연금 가입 고객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이외에 IRP 10년 이상 장기 가입 고객 할인율 확대와 연금방식으로 수령 시 수수료 감면, 사회적 기업 수수료 50% 우대, DB·DC형 30억원 이하 기업과 IRP 1억원 미만 고객 수수료 인하 등을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세계적인 경기둔화 여파 속에 하반기 금리 우하향 추세까지 겹쳐 ‘퇴직연금 수익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다.
한 고객은 “퇴직연금 가입이 수수료에 따라 은행을 옮기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수수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수익률에 초점을 맞추면 고객이 자연스럽게 그 은행으로 몰리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원금 보장’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은행의 입장에서는 수익률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
금융업계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안전성’이 최우선이다”며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운용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