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바라지 않았던 진실이 본인의 입을 통해 공개됐다. 자신의 건강과 관련해 무수한 소문에 휩싸였던 유상철(48)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19일 구단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직접 자신의 상태를 밝혔다. 병명은 이미 소문이 무성했던대로 췌장암 4기. 유 감독이 올린 글을 읽은 한 축구계 관계자는 "천 분의 일, 만 분의 일 확률이라도 아니길 바랐는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유 감독의 건강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달 19일, 성남FC와 원정 경기가 끝난 뒤였다. 한창 강등 전쟁 중이던 인천은 무고사(27)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값진 승점 3점을 가져왔다. 힘든 경기였고, 소중한 승점이었기에 경기 후 쏟아진 선수들의 눈물에도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선수들의 표정은 단순히 강등 전쟁에서 따낸 승점 3점에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었고, 벤치를 지키던 이들조차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은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경기 내내 몸상태가 좋아보이지 않던 유 감독의 안색과 어우러져 소문은 발빠르게 퍼져나갔지만, 사실을 알고 있던 이들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유 감독이 직접 얘기하기 전까진 누구도 그의 상태를 입 밖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문이 퍼지고 추측이 번지며 병명과 가족력이 공개되고, 구단은 '황달 치료를 위해 입원하기로 결정했다'는 공식 발표를 내고 일단락을 냈다.
그로부터 한 달, 이제 정규리그 종료까지 단 두 경기만 남겨놓은 상황에서 유 감독은 자신의 병명을 공개했다. 팬들에게 직접 말해야겠다는 판단 끝에 '유상철 감독이 팬 여러분께 전하는 편지'를 썼다. 휴식기 동안 항암 치료를 받고 선수단에 복귀해 다시 강등 전쟁 앞에 선 유 감독은 "병원에 있으면서 역시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는 걸 느꼈다.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선수, 스태프들과 함께 그라운드 안에서 어울리고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한다"는 말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인천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은 2경기서 사활을 걸고 잔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유 감독의 의사에 팬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치료도 치료지만, 췌장암은 통증이 심한 병이다. 유 감독이 그라운드가 아니라 병원에 입원해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는 진심어린 걱정이 쏟아졌다. 그러나 유 감독 본인의 의사가 굳건했다.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는 유 감독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인천 유나이티드의 감독으로 선수단과 함께하기를 선택했다.
유 감독은 처음 인천 감독으로 부임할 때 팬들에게 '반드시 K리그1 무대에 잔류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또 성남 원정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하기 전, 선수들에게 '빨리 치료를 마치고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리고 이날 공개한 편지를 통해, 인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응원하고 함께 기적을 바라주는 팬들에게 세 번째 약속을 남겼다. "나 또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또 버티겠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으로 병마와 싸워 이겨내겠다"는 약속이다.
두 경기를 남겨놓은 인천은 현재 승점 30점으로 10위. 11위 경남(승점29) 12위 제주(승점27)와 승점차가 각각 1점, 3점에 불과한 만큼 남은 경기서 순위가 어떻게 변할 지 모른다. 10위를 지켜내지 못하고 12위로 떨어지면 자동강등, 12위를 피하더라도 승강 플레이오프에 나서야하는 일정이 기다린다. 유 감독의 몸상태를 생각하면 인천은 어떻게든 10위를 지켜내고, 그가 약속한 것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기적은 그것을 믿는 자에게만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 유 감독이 인천을 믿고 있는 만큼, 인천 선수단도 유 감독을 믿고 있다. 이제 유 감독의 세 가지 약속을 모두 이루기 위해, 인천 선수들이 남은 180분의 시간 동안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만 남았다. '치료 받고 그라운드로 돌아오겠다'는 두 번째 약속을 지킨 유 감독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버티겠다는 그의 세 번째 약속을 위해 인천이 더욱 간절해져야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