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 더 채우면 딱 100년이다. 한국 남자 럭비가 올림픽 본선이라는 꿈의 무대에 진출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0년에서 4년 모자란, 96년이었다.
서천오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럭비 7인제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본선에 진출했다. 한국은 24일 인천 남동아시아드 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결승에서 홍콩을 12-7로 꺾고 올림픽 본선 진출의 쾌거를 이뤄냈다. 아시아 지역예선에 걸려있는 올림픽 직행 티켓은 단 한 장. 조별리그에서 아프가니스탄(19-0), 스리랑카(44-7)를 꺾고 C조 1위로 토너먼트에 돌입한 한국은 8강에서 말레이시아(32-7), 준결승에서 중국(12-7)을 차례로 꺾고 결승에서 홍콩을 만나 연장 접전 끝에 장용흥(NTT커뮤니케이션)의 역전 트라이로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한국에 패한 홍콩은 중국과 함께 이번 대회 2, 3위 자격으로 내년 6월에 열리는 '패자부활전' 성격의 대륙 간 예선에 참여한다.
럭비의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은 1923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후 96년 만에 이룬 쾌거다. 1924년 파리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역사에서 사라졌던 럭비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7인제로 부활하면서 92년 동안 단절됐던 올림픽의 럭비 역사가 재개됐고,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아시아 럭비 강국인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하며 한국에 새 역사를 쓸 기회가 주어졌다. 말이 기회지, 아시아 럭비의 양강으로 군림하는 홍콩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3인자' 딱지에 갇혀있던 한국으로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험난한 길이기도 했다.
그동안 아시아 럭비 최강의 자리는 일본과 홍콩이 지켜왔다. 이들에 밀린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4년 인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3연속 동메달에 그치며 '3인자'에 그쳤다. 럭비가 올림픽 무대에 복귀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때도 일본이 아시아 대표로 올림픽 직행 티켓을 가져갔고, 한국은 일본, 홍콩에 이어 다시 한 번 3위에 그치며 본선에 나서지 못했다.
더구나 한국은 9월 열린 아시아 세븐스 시리즈에서 중국에 19-24로 패하면서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진출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일본 없는 아시아 지역예선이 올림픽에 나설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회를 앞두고 중국에까지 패한 것은 타격이 컸다. 지역예선에서도 중국에 2번 시드를 내주고 3번 시드를 받은 한국은 준결승에서 중국에 12-7 역전승을 거두면서 분위기를 가져왔다. 결국 결승 무대에서 홍콩까지 12-7 역전승으로 따돌리며 끈기와 투혼의 저력을 보였다. 전통의 아시아 강호이자 영국계 귀화 선수들이 주력인 홍콩은 한국과 결승 전까지만 해도 조별리그부터 준결승까지 무실점 행진을 달리던 팀이었다. 그러나 경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림픽의 꿈을 향해 트라이를 성공시킨 한국의 저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서천오(국군체육부대) 대표팀 감독은 "한국 럭비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올림픽 티켓을 따내 감개무량하다"며 "전국체전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안은 선수가 매우 많아서 훈련도 제대로 못 할 정도였다. 하지만 주장 박완용을 중심으로 선수들 모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똘똘 뭉쳤다. 그런 절실함이 있었기에 기적과 같은 우승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올림픽 본선 진출로 한국 럭비의 새 역사를 쓴 서 감독은 "이제 올림픽 1승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다짐하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