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업계가 중증 폐질환 의심 물질이 검출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실상 퇴출했다. 지난 12일 정부가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 내 유해 의심 성분 분석 결과'를 발표한 직후 편의점들이 의심 물질이 들어간 것으로 확인된 제품을 즉각 판매 중단한 데 이어 13일 면세점 업계도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전자담배 업계는 정부 발표를 정면 비판하는 동시에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사라지는 액상형 전자담배
15일 담배 업계에 따르면 롯데·신라·신세계면세점 등은 13일부터 KT&G의 '시드 토바' '시드 툰드라', 쥴랩스코리아의 '쥴 팟 딜라이트' '쥴 팟 크리스프'를 판매하지 않기로 했다. 편의점 4개 업체 씨유(CU)·지에스(GS)25·세븐일레븐·이마트24 등은 지난 12일 같은 조치를 했다.
이는 12일 보건당국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153개 액상형 전자담배를 대상으로 실시한 분석 결과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르면 KT&G·쥴랩스코리아 등이 판매하는 액상형 전자담배 니코틴 카트리지에서 비타민E 아세테이트 등 유해 의심 물질이 미량 검출됐다.
비타민E 아세테이트가 나온 제품은 시드 토바와 쥴 팟 크리스프였고, 디아세틸·아세토인 등 가향 물질이 나온 제품은 시드 툰드라와 쥴 팟 딜라이트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은 이들 물질이 의문의 폐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사용 중단을 권고한 바 있다.
미국에서는 이달 3일까지 액상형 전자담배 관련 폐 질환이 2291명에게서 발병했고, 이중 사망자가 48명 나왔다. 미국 보건당국은 대마 유래 성분(THC)이 이런 폐 질환을 유발하는 것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는데, 국내 유통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중 해당 성분이 검출된 제품은 없었다.
판로 막힌 담배 업계 강력 반발…법정 대응 예고
전자담배 업계는 편의점과 면세점의 판매 중단 조치로 사실상 판로가 막히자, 정부의 분석 결과를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쥴랩스코리아는 공식 입장을 내고 "쥴랩스는 어떤 제품에도 비타민 E 아세테이트 성분을 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KT&G 역시 "식약처는 '시드 토박' 제품에서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극미량 검출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고 자체 검사에서도 검출되지 않았다"며 "사실 여부를 다시 한번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들 업체를 대표하는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는 13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국민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병준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 회장은 "문제의 비타민 E 아세테이트 성분은 미국 폐질환 의심환자가 사용한 제품에 들어있는 양의 최고 880만 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 중단 권고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가 불명확한 근거로 전자담배 사용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고의적으로 업계를 침체시켜 업계 종사자들이 생계에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며 "협회 차원에서 법적인 대응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 "미량이라도 검출된 사실이 중요…사용중단 유지할 것"
전자담배 업계의 반발에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나성웅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15일 "극소량이라도 해당 물질이 발견된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가향물질까지 검출됐고, 폐질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결과가 명확히 나올 때까지 사용중단 권고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규제법안이 없는 유사 담배 유통량도 매우 많고, 국민에 위해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도 "실제 미량이라도 검출됐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국내 유통 액상형 전자담배에 다른 가향물질이 검출되는지도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2020년 3월 평가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용중단 권고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또 질병관리본부는 '비타민E 아세테이트' 등의 폐손상 유발 여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조사감시 및 연구결과를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검토해 발표할 예정이다. 식약처도 직접 인체에 흡입돼 영향을 주는 기체성분에 대한 유해성분을 분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