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U-17 월드컵 8강으로 이끈 김정수 감독(왼쪽)과 U-20 월드컵 준우승 사령탑 정정용 감독. 두 사람은 축구협회의 유망주 육성 및 발굴 프로젝트를 주도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준우승하고, 다섯 달 뒤에 U-17 대표팀이 월드컵을 치렀어요. 정정용 감독님이 팬들 눈높이를 너무 올려놓아서 얼마나 부담됐다고요.”(김정수 U-17 대표팀 감독)
“한국 축구 역사는 또 다시 깨지게 되어 있다. 빨리 깨라. 하하.”(정정용 전 U-20 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지도자 세미나가 16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렸다. 올해 한국 축구 지도자 성공 사례의 대표적인 두 인물이 자리를 함께했다. 6월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이끈 정정용(50) 감독과 지난달 브라질 U-17 월드컵에서 8강행을 지휘한 김정수(45) 감독이다. 한국을 U-17 월드컵 8강으로 이끈 김정수 감독(왼쪽)과 U-20 월드컵 준우승 사령탑 정정용 감독. [사진 대한축구협회]2019년 대한민국을 축구로 행복하게 만든 두 감독이 세미나 직후 모였다. 김 감독이 먼저 “정 감독님은 선수들 능력을 끄집어내 극대화한다. 세트피스 전술은 거의 예술가 수준”이라고 선배를 추어올렸다. 지휘자 포즈를 취하며 흐뭇해 한 정 감독이 답례하듯 “전방 압박 같은 팀 컬러가 확실하다”고 김 감독을 칭찬했다.
U-20월드컵 당시 이강인을 껴안는 정정용 감독. [연합뉴스]정정용 감독은 선수들의 창의력을 존중했고, 상대에 따라 ‘팔색조 전술’을 펼쳤다. 김정수 감독은 아이티와 조별리그, 앙골라와 16강전에서 강력한 전방 압박 전술을 구사했다. 김 감독은 “그간 한국 축구가 메이저 대회에서 전방압박을 주도적으로 한 적이 없었다. 선수들이 힘들다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U-20팀은 1999년생, U-17팀은 2002년생이 각각 주축이다. 1980년대생 박지성(38) 등 ‘Y세대’는 투혼과 헌신이 상징이다. 90년대생 손흥민(27·토트넘) 등 ‘밀레니얼 세대’는 투혼·헌신에 기술을 더했다. 2000년대생은 ‘Z세대’다. 알파벳 마지막 글자 Z처럼 20세기 마지막 세대로, 1995년 이후 출생했다. U-20팀이강인은 결승전 패배 후 “뭐하러 울어요. 전 후회 안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기든 지든 경기 자체를 즐겼다. U-17팀 최민서(17·포항제철고)는 “엄마표 골 수당이 있다. 10만원”이라고 말할 만큼 유쾌하다. 올해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인 정정용 감독(오른쪽)과 이강인이 지난 2일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연간 시상식에서 남자 감독상과 유망주상을 각각 수상했다. [연합뉴스 ] 정정용 감독은 “(Z세대는) 자기표현이 확실하고 주장도 강하다”고 했다. 김정수 감독은 “때로는 힘든 걸 피하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빠지면 몰입이 강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요즘 아이들이라 가능했던 선물인데, 선수들이 나와 함께한 3년을 5분짜리 영상으로 편집해 선물로 줬다. 음악도 깔고, 다들 한마디씩 남겼다”며 “한 선수가 ‘벤치에서 편하게 보라’고 했는데, 사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친구”라고 웃으며 말했다.
두 감독은 어린 선수들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을까. 정정용 감독은 필살기는 수평적 리더십이었다. 친구처럼 선수들을 대했다. 선수들도 승리 직후 정 감독에게 물을 뿌리는가 하면, 한 선수는 훈련 도중 “어이~ 정 감독”이라고 불렀다. EBS 사장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는 ‘펭수’ 같다.
정 감독은 “자식 키우는 거랑 똑같다. 엄원상은 내성적이라 더 칭찬했다. 이재익은 야단쳐도 절반만 들어 강하게 대했다”고 소개했다. 이강인에 대해선 “갈빗집도 원조집이 맛있다. 강인이는 내가 처음 대표팀에 뽑았다. 첫사랑 같은 사이다. 며칠 전에도 연락이 왔다”고 전했다. U-17월드컵에서 최민서를 안아주는 김정수 감독. [연합뉴스]김정수 감독은 “난 솔직히 쎈 이미지다. 어린 선수라도 책임감을 심어주고 싶었다. 각자 방문 앞에 각오를 적은 A4 용지를 붙이게 했다.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개개인을 팀으로 묶어냈다. 김 감독은 “각자 휴대폰만 보길래 미팅실을 마련해 서로 이야기 나누게 했다. 매트 깔고 편하게 누워 함께 영화를 봤고, 윷놀이와 보드게임도 했다. 브라질에서는 슈하스코(현지 고기요리)를 먹으러 외식도 나갔다”고 했다.
선수 시절 두 감독은 스타는 아니다. 정 감독은 실업팀(할렐루야, 푸마)에서만 뛰었다. 김 감독은 K리그 대전과 부천을 거쳤고, A매치 출전은 2경기다. 정 감독은 10여년간 유소년을 지도했고, 김 감독도 2014년부터 어린 선수만 가르쳤다. 한 우물만 팠던 두 지도자의 끈질김이 국제무대에서 화려한 꽃을 피웠다. 정 감독은 “국내에 김 감독처럼 한 우물만 판 지도자가 많다”고 소개했다. 정정용 감독은 프로축구 2부 리그 서울 이랜드 사령탑에 올랐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다. 정 감독은 “내 인생이 그렇다. 팀을 맡을 때마다 ‘경험도 없는데 이 친구로 되겠어’란 말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유소년만 맡다가 프로에서 통하겠어’라는 말이 나온다. 잘 준비해서 결과를 만들고 싶다”고 각오를 전했다. 김정수 감독은 “아직 다음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정 감독에 이어 U-20팀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