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외적인 요소 때문에 더 의미 있는 두 경기가 단 하루 동안 부산을 뜨겁게 달군다. 18일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리는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 남자부 최종전, 홍콩-중국전과 한국-일본전이다.
흥행 참패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아시안컵이지만 이날 열리는 두 경기에 쏟아지는 관심은 어지간한 빅매치 못지 않다. 우선 최근 국제대회에서 부딪히는 일이 거의 없어 동아시안컵에서만 주로 성사되는 남자 축구대표팀의 한일전이 이날 열린다.
한일전이야 두 말할 필요 없는 동아시아 최고의 라이벌전이다. 열렸다 하면 양국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지지 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 결과에 대한 부담도 크다. 얽히고 설킨 역사적 갈등 위에 켜켜이 묵은 감정들이 아로새겨져, 매 경기가 혈투의 양상을 띈다. 더구나 이번 맞대결은 최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지소미아 연장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면서 더더욱 큰 주목을 받았다.
한일전에 나서는 양국 선수들의 각오도 결연하다. 아무래도 조금 더 비장한 쪽은 한국이다. 일본전을 앞둔 선수들은 입을 모아 “일본전은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는 말을 한다. 최종전 한 경기에 우승이 걸렸으니 승리를 원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 상대가 일본이 되니 간절함이 두 배가 되는 효과다.
이에 맞서는 일본도 ‘한국에 질 수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번 경기 일본이 승리에 간절해진 이유 중 하나는 ‘복수’다. 일본은 가장 최근 맞대결이었던 2017년 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한국에 1-4로 완패를 당했다. 안방이자 심장인 일본 도쿄에서 열린 대회, 최종전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를 당하면서 자존심을 구긴 만큼 이번에 설욕하겠다는 의지다.
이번 대회 최고의 ‘맛집’이 될 한일전에 앞서 열리는 홍콩-중국전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한일전보다 더 뜨거울 수 있는 경기다. 1997년 영국이 홍콩 주권을 반환한 이후 벌써 20년 넘게, 크고 작은 갈등 속에서도 두 나라는 일국양제(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 원칙을 지켜왔다. 그러나 최근 송환법 문제가 도화선이 되며 홍콩에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어 중국과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
반 년 넘게 민주화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홍콩은 이번 대회에서도 정치적 메시지를 끊임없이 발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행동이 바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이 나올 때 등 돌리고 선 채 야유하는 것이다. 대신 시위대가 즐겨 부르는 ‘홍콩에 영광을’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관중들도 있다. 국제대회 때마다 자주 벌어지는 풍경으로, 이 때문에 홍콩축구협회가 계속 벌금을 내고 있지만 홍콩 국민들의 반중 정서는 굳건하다. 최근 격화된 양국간 분위기를 생각하면, 2015년 이후 4년 만에 성사된 두 팀의 맞대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예상하기 어렵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경기장에서 스포츠의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엄격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정치적으로 가장 중립적인 그라운드 위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가 있다. 이번 동아시안컵도 마찬가지다. 축구에서 정치적 함의를 배제한다 치더라도, 한일전과 홍콩-중국전은 일종의 대리 전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라운드 안은 선수들의 경쟁의 장이지만, 그라운드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만큼 대한축구협회도 안전을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기동대의 숫자를 세 배 증원해 240명까지 늘리고, 사설 경호원의 숫자도 늘려 640명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