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연합뉴스 최태원(59) SK그룹 회장과 노소영(58)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SK그룹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노 관장이 기존의 이혼 불가 입장을 바꿔 맞소송에 나서면서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지분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SK그룹이 '그룹 지배 핵심키'인 SK㈜ 지분이 축소될 것을 대비해 지배구조 개편을 서두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조4000억원' 세기의 이혼소송
18일 법원에 따르면 노 관장은 지난 4일 서울가정법원에 최 회장을 상대로 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 소송을 냈다.
이미 최 회장이 2017년 신청한 이혼 조정이 결렬되면서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노 관장도 맞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특히 노 관장의 반소에는 재산분할 부분도 포함돼 법원은 기존과는 달리 재산 부분도 함께 심리할 것으로 보인다.
노 관장은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의 42.29%에 대한 재산분할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1297만5472주로 전체의 18.29% 수준이다.
노 관장의 요구가 법원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최 회장 보유 주식 가운데 548만7327주가 노 관장에게 넘어간다. 이는 17일 종가(25만6500원) 기준 약 1조4074억원에 달한다.
앞서 최 회장은 2015년 노 관장과 이혼 의사를 밝히고 한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혼외자녀의 존재를 공개했다. 노 관장이 이혼에 응하지 않자 최 회장은 2017년 7월 노 관장을 상대로 이혼조정을 신청했다. 이혼조정은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고 부부가 법원의 조정에 따라 협의 이혼하는 절차다.
하지만 양측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지난해 2월 정식 소송절차에 돌입했다. 노 관장이 이혼의사를 공식화하면서 결국 최태원 회장의 재산 분할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현재 최 회장이 노 관장을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은 4번째 변론기일까지 진행된 상태다.
노 관장 승소 시 3대 주주 등극
노 관장이 '그룹 지배 핵심키'인 SK㈜ 지분을 요구하면서 그동안 특정 계열사에 국한됐던 지배구조 리스크가 SK그룹 전반으로 퍼졌다.
SK㈜는 SK그룹의 주력회사인 SK이노베이션·SK텔레콤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고, 이들 자회사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손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다. 세계 반도체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핵심계열사 SK하이닉스만 봐도 SK텔레콤의 자회사이자 SK㈜의 손자회사다. 그래서 SK㈜의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그룹 차원의 의사결정 권한과 직결된다.
이번 이혼 소송이 노 관장에 유리하게 판결이 난다면 최 회장의 개별 지분율은 18.29%에서 10.56%로 감소한다. 반면 노 관장의 지분율은 0.01%에서 7.74%로 높아진다. 최 회장(재산분할 후 10.56%)과 국민연금(8.26%)에 이어 3대 주주로 등극해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노 관장이 7.74%의 지분을 보유하더라도 최 회장의 지배력을 송두리째 흔들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겉으로만 보면 노 관장이 우호 세력을 확보해 최 회장 경영권을 위협하기 쉬워 보이지만 SK㈜의 자기주식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게 업계의 의견이다.
또 최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 SK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6.80%를, 남동생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이 2.34% 등을 각각 보유해 이들 특수관계인 지분을 고려하면 충분히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7.74%가 현 경영진 견제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하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다. 노 관장이 재산분할 받은 후 국민연금과 손을 잡기라도 한다면 단숨에 15%의 의결권을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이사 선임 등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 서두를 듯
재계에서는 SK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이런 '오너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노 관장이 승소 시 최 회장 개인 지분을 포함한 우호지분이 급감하게 된다"며 "총수의 지분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SK그룹 입장에서는 당장 내년부터 개편 작업을 본격화할 가능성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10월 SK㈜가 7200억원(발행주식의 5%)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한 것이 지배구조 리스크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주장도 있다.
SK그룹이 “주주가치 제고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매입한 자사주를 최 회장 우호 세력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SK텔레콤이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도 내년 예상되는 지배구조 변화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SK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두고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시나리오가 SK텔레콤의 중간지주사 전환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SK텔레콤이 상장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지분율(현행 20.07%)을 30%까지 늘려야 가능한 방안이다. 그룹 입장에서는 SK하이닉스 지분을 확보할 자금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SK텔레콤의 통신 부문을 사업 기업, 비통신 부문을 투자 기업으로 분할하기 위한 정지 작업으로 조직을 이원화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