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10년대(2010~19년)가 저문다. 지난 10년간 골프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가 스캔들과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또 골프는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됐다. 대중화 바람도 불었다. 한국 골프의 국제 경쟁력은 더욱 높아졌다. 한국 선수들의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지배는 여전했다. 그 사이 미국 프로골프(PGA)에도 한국 선수가 늘었다. 격변의 2010년대 골프계를 돌아본다.
지난해 3월 파운더스컵 트로피를 든 박인비. [AP=연합뉴스] 2010년대 한국 여자 골프의 중심에는 박인비(31)가 있다. 그는 최근 LPGA가 진행하는 ‘2010년대 최고 선수를 가리는 팬 투표’에서 4강까지 올라왔다. 미국 골프위크도 ‘2010년대 여자 골프를 가장 강력하게 지배한 선수’로 그를 뽑았다. LPGA는 “박인비는 역사적인 성과를 통해 기억에 남을 지난 10년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2010년대를 마감하는 시점에 박인비의 성과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여자 골프의 다양한 기록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이 기간 메이저 6승 등 통산 18승을 거뒀다. 여자골프세계 1위를 106주간 지배했다. 모두 2010년대 최다, 최장 기록이다. 4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고, 2016년 리우올림픽 금메달까지 따면서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2016년 6월엔 LPGA 명예의 전당 최연소 입성 기록도 세웠다. 그의 타이틀이 ‘골프여제’다.
지난 7월 22일 LPGA 투어 에비앙 챔피언십을 앞두고 중앙일보와 만난 박인비. 에비앙 레뱅(프랑스)=김지한 기자 박인비에 버금가는 2010년대 여자 골퍼로는 청야니(대만), 리디아 고(뉴질랜드)를 꼽을 수 있다. 청야니는 2010~12년에만 13승을 거둔 뒤 끝 모를 부진에 빠졌다. 리디아 고도 2014~16년 12승을 거둔 뒤로는 1승뿐이다. 그런 면에서 박인비의 꾸준함은 더욱 돋보인다. 올해는 우승이 없었지만,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 이후 꾸준히 매년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박인비가 정점을 찍었던 2016년 리우올림픽 우승 당시 모습. [중앙포토] 박인비가 골프 여제로 군림할 수 있었던 건 퍼트와 멘털 덕분이다. 아무리 멀어도 홀컵에 쏙쏙 넣는 퍼트와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멘탈 때문에 ‘컴퓨터 퍼트’, ‘침묵의 암살자’ 등의 별칭을 얻었다. 또 하나, 시련을 딛고 이뤄낸 영광을 빼놓을 수 없다. 박인비는 자신의 최고 성과로 2016년 8월 리우올림픽 금메달을 꼽는다. 몇 달씩의 손가락 부상을 딛고 올림픽 금메달 퍼트를 성공시킨 뒤 두 팔을 번쩍 드는 장면은 골프 팬 기억에 생생하다.
박인비는 지난 7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리우올림픽은 골프선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와 영광이 공존했던 순간이다. 역설적으로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며 “골퍼 박인비를 완성한 무대”라고 자평했다. 후배들은 그를 보며 동기 부여가 됐다. 고진영(24), 박성현(26), 김세영(26) 등은 “인비 언니를 보며 꿈을 키웠다”며 올림픽 금메달을 자신들의 목표로 잡았다. 잠재력 있는 어린 선수들이 연이어 등장한 데도 그가 기여한 셈이다.
박인비가 19일 서울 서초구 세빛섬 플로팅아일랜드에서 열린 골프 브랜드 젝시오의 2020 신제품 발표회에서 포토타임을 마친 뒤 행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베테랑 박인비는 여전히 큰 꿈을 그린다. 리우올림픽 후 “좀 더 즐기는 골퍼가 되겠다”고 했던 박인비는 2020년 새 시즌을 앞두고 “자신에게 변화를 주고 싶다. 후배들과 당당히 겨뤄보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실제로 2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가 일찌감치 새 시즌 준비에 들어갔다. 박인비의 우승 시계는 개인 통산 19승에서 1년 9개월째 멈춰있다. 새 시즌 첫 목표는 20승을 채우는 것이다. 통산 20승은 LPGA 70년 역사에 27명뿐이다. 더 나아가 도쿄올림픽 출전과 대회 2회 연속 금메달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