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일.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할 사진 촬영. 시작되는 순간부터 티격태격했다. 셋 중 가장 선배인 이정후(22·키움)가 절친한 후배 강백호(21·KT)에게 "네가 가장 작고 못생겼으니까 가운데 서"라고 농을 던졌다. 강백호는 가만히 있지 않고 "그건 암살이다"며 "본인이 정말 멋있는 줄 안다"고 되받아쳤다. 긴 기럭지를 자랑하는 정우영(21·LG)은 그런 선배들의 말싸움(?)이 재밌다는 듯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짓궂게 장난을 주고받았지만 인터뷰 내내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일간스포츠는 경자년(庚子年)을 맞이해 최근 3년간 신인왕을 수상한 한국 야구의 미래 삼총사를 만났다. 리그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온 이정후와 강백호, 정우영이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종범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KBO 리그에 센세이션을 몰고 왔다. 입단 첫해 고졸 신인 최다 안타를 기록하며, 리그 10년 만에 순수 고졸 신인왕을 수상했다. 매년 성장을 거듭하며 3년 연속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고, 이제는 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교타자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입단 전부터 대어급 신인으로 평가받은 강백호는 데뷔부터 강렬했다. 역대 첫 고졸 신인 데뷔 첫 타석 홈런을 때려낸 그는 고졸 신인 데뷔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에 신인왕까지 수상했다. 첫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프리미어12 대표팀을 통해 자신이 향후 대표팀 중심타자로서의 재목임을 확인시켜줬다.
반면 이정후, 강백호와 달리 지명 순번이 느려 입단 전에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정우영은 깜짝 신인왕을 수상했다. LG 선수로는 이병규(1997년) 이후 무려 22년 만의 수상이다. 고졸 신인 투수 최초로 올스타 베스트12에도 선정됐다.
인터뷰에서 셋의 색깔을 확실히 드러났다. 맏형인 이정후는 가장 의젓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집중했다. 강백호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강백호는 2016년 청소년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부터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이정후와 프리미어12에서 늘 함께 다녔다. 또 강백호는 정우영과 동갑내기나 서울고 1년 선배다. 그래서 이정후와 정우영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이제 프로 무대 첫 시즌을 마친 정우영은 선배 틈 속에서 평소와 달리 다소 머뭇머뭇했다.
최근 3년 신인왕을 수상한 꿈 많은 20대 초반 청년, 이들의 동반 첫 인터뷰는 웃음이 멈추지 않을 만큼 유쾌하게 진행됐다.
-비시즌이라 자주 만나지 못하겠다. 이정후(이하 이)="(강)백호와는 자주 만난다. 백호가 요즘 서울에 집을 구해 개인 운동을 한다고 있어서…" 강백호(이하 강)="일주일에 두 번은 얼굴을 보는 것 같다. 슬리퍼 신고 나가서 편하게 만나 커피 한잔하고. 내가 밥을 사려고 해도 형이 선배라고 한 번도 계산하지 못하게 하더라."
강백호는 지난달 2019 조아제약 프로야구 대상 시상식에서 전년도 수상자로 나서 서울고 1년 후배이자 동갑내기인 정우영에게 신인왕을 전달했다. 당시 이야기를 꺼내자 강백호는 정우영을 쳐다보며 "인사 깎듯이 해봐라"고 장난쳤다. 잠시 후 강백호는 "지난해 같은 시상식에서 나는 (전년도 수상자인) 정후 형에게 안 받았는데"라고 하자 이정후는 "나는 훈련소에서 총 쏘고 있었지"라고 말했다. 이정후는 2017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 병역 혜택으로 4주 기초 군사 훈련 중이었다.
-이정후와 정우영의 친분은 어떻게 되나. 정우영(이하 정)="프로 입단 전에는 고등학교 때 경기에서 봤다." 강="(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어) 정후 형이 무서울 것이다. 눈빛 봐라. 이글이글하지 않나."
-이정후 역시 학창 시절 강백호를 처음 마주했을 때 "정말 무서웠다"고 한 적 있는데. 이="백호요? 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거다. 프로 물 먹고 많이 달라졌다. 당시에 나는 엄청나게 말랐는데, 백호가 까까머리에 지금 인상이라고 생각해봐라. 인상이 아주 무서웠다." 정="맞다. 서울고 시절과 비교하면 백호의 인상은 지금 많이 선해졌다." 강="우영이는 학교 다닐 때 나를 많이 무서워했다."
-강백호와 정우영은 나이는 같지만, 고교 1년 선후배 사이다. 강="2학년 때부터 우영이가 내게 존댓말 대신 편하게 했다." 정="사실 그때부터 백호를 안 무서워했다."
-때린 적은 없나. 정="오히려 내가 백호를 때렸다." 강="선배인 내가 맞았다. 그래서 정후 형한테 고스란히 물려주고 있다. 요즘 사회는 그렇다(웃음)" 이="최근에 밥 먹는데 놀리니까 '나는 형 때려'하면서 진짜 주먹으로 치더라. 저 덩치에 한 대 맞으면 엄청 아프다."
-올해 셋의 상대 전적을 기억하나. 정="백호에게 (2타석 1타수) 포볼과 땅볼을, 이정후 선배에게는 (1타수) 안타를 맞았다." 이="보통 좌타자는 사이드암 계열 투수를 상대하기 수월하다. 그런데 우영이는 투심 패스트볼 계열이라 안타를 뽑기 힘들더라. 그 안타 1개도 운이 좋았다." 강="뭐 (정후) 형은 올해 193안타 모두 운이 좋았지(웃음). 나는 시범경기에서 우영이에게 안타를 친 적 있다. 이를 포함하면 올해 3타석 2타수 1안타 1볼넷이다." 이="야~추하다 추해."
-최근 3년 연속 고졸 루키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생애 단 한 번 수상이 가능하고, 프로 입단 후 처음 받은 상이어서 의미가 있다. 전년도에도 신재영 선배가 신인왕을 탔다. 히어로즈 하면 신인왕이 떠오르게끔 하는 이미지를 계속 이어갈 수 있어 영광스러웠다." 강="매년 한 명밖에 받을 수 없는 상이다. 대선배들과 같은 상을 받아 영광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평생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은 상이다." 정="(전년도 강백호에 이어) 서울고 출신이 2년 연속 신인왕을…" 강="대 서울고거든." 이="휘문고에는 박민우(2014년 수상) 선배가 있다." 강="2년 연속 수상자는 없잖아. 우리도 3년 연속은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어쨌든 정후 형이 (고졸 순수 신인왕의) 스타트를 끊어줘서 우리가 이어서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언젠가는 누군가 스타트를 끊어야 했던 건데 운 좋게 내가 백호보다 1년 먼저 태어나서." 강="무슨 운칠기삼도 아니고(웃음)."
"같은 해에 신인왕을 경쟁했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정후는 "그럼 내가 강백호에 졌을 거다"라고 말했다.
-서로에게 뺏고 싶은 점이 있나. 정="저는…." 강="일단 선배님부터 말씀하시고." 이="백호의 굉장한 파워와 두꺼운 허벅지. 우영이는 길쭉한 다리다." 정="마찬가지로 백호는 허벅지…." 강="가진 게 이거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저는 제 외모에 만족합니다." 이="아 최고지." 정="이정후 선배는 정교함과 꾸준함을 본받고 싶다." 강="정후 형이 훈련과 경기에 임할 때 보이는 여유. 또 정교함과 선구안, 안정적인 플레이, 마지막으로 인성까지 닮고 싶다. 내 친구(정우영)에게는 우월한 키와 대범함을 뺏고 싶다. (선배들에게 막 대할 수 있는?) 그렇다. 우영이가 선배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이="맞다." 강="처음 뵙는 선배들에게도 '아 선배님'이라고 하며 싹싹하게 다가가더라. 나는 그런 걸 굉장히 못 한다." 이="나도 못 하는데."
-평소 취미 생활은. 이="책을 가까이하고 음악, 클래식, 전시회를 좋아한다." 강="미술관이라고?(웃음) 나는 보거나 들은 적이 없는데. 집이 미술관이겠지(웃음). 나 역시 책을 자주 본다. (형이) 책 종류에 관해선 얘기하진 않았는데 내가 보는 웹툰도 독서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나만 이미지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정우영을 보며) 넌 취미가 뭐야? 말을 왜 잘하는 것 같아?" 정="나는 평소에 대화하는 걸 좋아하니까."
이제 갓 20대 초반의 꿈 많은 젊은 청년에게 '10년 뒤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강백호는 "각자 서로의 목표를 정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본인이 말하면 다들 겸손하게 답할 것 같아서다"고 했다. 이정후와 정우영도 동의했다.
정="백호는 10년 뒤에 적어도 통산 150홈런을 치고 있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옆에서 이를 들은 강백호는 '얘 뭐지'라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기자가 '수치가 너무 적은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다.
정="너 올해 홈런 13개 쳤잖아." (강백호는 말문이 막힌 듯한 표정이었다.) 이="백호, 너 너랑 얼마 차이 안나네." 강="형 몇 개 쳤는데?" 이="6개." 강="통산 홈런이 몇 갠데? 나는 지난해 홈런 29개 더 있어." 정="백호가 지금처럼 꾸준히 활약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강="우영아, 정후 형은 10년 뒤에 안타 몇 개 기록하고 있을 것 같아? 지금까지 1000개 쳤거든." (이정후는 데뷔 후 3년간 535안타를 기록 중이다. 강백호는 다소 부풀려 얘기했다.) 이=(강백호를 바라보며) 신났냐?" 강="원래 이렇게 티키타카 해야 재밌다." 이="입 안 아파? 그 입만 좀 조용히 했으면…"
진지 모드로 돌아온 강백호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강="정후 형은 타율 3할 5푼에 한 시즌 200안타는 에버리지로 기록할 것 같다. 거기에 힘까지 붙어 시즌 20홈런까지 때려내는 '미친놈'이 되어있지 않겠냐고 감히 예상해본다. 이 친구(정우영)는 선발 투수한다면 통산 50승은 여유 있게 달성할 것 같다. 중간 투수로 뛰면 100홀드를 충분히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통산 100홈런만 치겠다. 10년 차 즈음에 똑딱이로 바뀌어서." 이="어이구 입만 살아서. 우영이는 선발로 뒤면 10년 뒤에 100승, 중간 계투라면 100홀드는 넘어설 거 같다. 그때까지 안 다치고 잘했으면 좋겠다. 백호는 의외로 달리기도 빠른 편이다. 도루 욕심이 있어 진정한 5툴 플레이어의 면모를 보여줄 것 같다. 수비력도 엄청나게 향상되어 있을 것이다."
이를 전해 들은 강백호가 손뼉을 치며 반겼다.
이="백호가 시즌 초반에 갑자기 도루한다고 나대다 다친 적 있다. 너 부상 전에는 도루 많이 했잖아." 강="전반기에만 7개 했지."
마지막으로 내년 시즌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 이번에도 강백호는 "겸손하게 답할 수 있으니, 내가 셋의 목표를 정해줘야겠다"고 나섰다.
강="정후형은 200안타, 너(정우영)는 선발할 거니?" 정="모르지." 강="그럼 선발 10승. 요즘은 토종 선발 10승도 쉽지 않으니까." 이="백호는 수비해야지. 타격은 지금도 훌륭하다. 수비만 잘하면 된다." 강="수비 잘해서 골든글러브 후보에 포함되고 싶다." (강백호는 올해 부상으로 골든글러브 후보 기준에 수비 102⅔이닝이 부족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수비 열심히 해." 강="네.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