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67)은 2일 발표한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LG생활건강(이하 LG생건)의 나침반은 이제 세계를 향해 있다.
차 부회장은 2020년 K뷰티 업계에서 가장 기대를 받는 최고경영자(CEO)다. LG그룹 내 최초의 '비LG맨 출신 부회장'인 그는 15년째 자리를 지키며 최장수 CEO라는 타이틀을 가졌다. LG생건은 2005년 차 부회장이 부임한 뒤 1조원 안팎에 그쳤던 매출을 7조원 대까지 키웠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지난해 11월 정기임원 인사에서 차 부회장을 재신임했다. 이는 단순히 과거 성과에 대한 치하가 아니다. 2020년에는 더 다른 모습을 보여 달라는 그룹의 뜻으로 읽힌다. 국내 뷰티 업계가 차 부회장이 만들어가는 경자년에 주목하는 이유다. 2020년 K뷰티는 LG생활건강 시대
LG생건은 아모레퍼시픽(이하 아모레)과 국내 화장품 ‘톱2’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매출 1·2위를 다투던 LG생건은 2017년 3년 만에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이후 LG생건은 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우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더 히스토리 오브 후(이하 후)’의 성공 덕이었다. 후는 지난해 단일 판매로 누적 매출 2조원을 넘어섰다. LG생건의 올해 매출 목표는 7조원 대다. 전체 화장품 군도 아닌, 단일 브랜드 하나로 전체 3분의 1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셈이다.
LG생건의 화장품사업 부문은 럭셔리 화장품과 프리미엄 화장품으로 분류된다. 럭셔리 화장품은 후·오휘·숨마 등이다. 면세점과 백화점을 통해 판매된다. 럭셔리 브랜드 화장품의 매출은 해마다 증가세다. 2016년 2조1979억원이었는데 2019년에는 약 3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LG생건은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후의 초고가 라인인 예헌보를 출시했다. 예헌보는 크림 가격만 100만원 이상이다. LG생건 관계자는 “화장품은 고부가가치 분야다. 가령, 세제는 부피가 커서 운반과 판매가 쉽지 않은데, 개당 1만원 선이다. 화장품은 작지만 개당 단가는 높다. 기업이 럭셔리 화장품 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M&A만 20여 차례…인수합병의 귀재
LG생건이 성장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열쇠는 기업 인수·합병(M&A) 이다. 차 부회장은 2005년 이후 코카콜라음료·더페이스샵·태극제약·뉴에이본 등 20여 차례에 달하는 M&A를 성사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코카콜라음료다. LG생건은 2007년 SPC그룹 등 유력한 경쟁업체를 제치고 코카콜라음료를 가져오는 데 성공했다.
코카콜라음료는 화장품과 생활용품으로 유지되던 LG생건에 음료라는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계기가 됐다. 코카콜라음료는 스프라이트와 조지아 등 주요 브랜드가 선전하면서 지난해 3분기 매출 4029억원, 영업이익 549억원을 달성했다. 전년동기 대비 각각 2.4%, 7.9% 증가한 수준이다. 기복이 없고 꾸준하다는 것이 음료 분야의 매력이다.
M&A를 통해 미래 먹거리도 발굴한다. 세계 뷰티 업계는 더마코스메틱(약국화장품)에 주목하고 있다. LG생건은 2017년 피부 연고 제품을 주 사업으로 하는 태극제약의 지분 80%를 446억원에 인수했다. LG생건은 M&A를 통해 충청남도 부여, 경기도 화성, 전라남도 장성 등 3곳에 생산공장을 활용하고 더마코스메틱 분야 역량을 키우고 있다.
해외 시장도 개척하고 있다. LG생건의 화장품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에 주로 영향력이 있다. 만약 중국 시장에 문제가 생길 경우 ‘후’ 등 화장품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
LG생건은 지난해 미국의 화장품·퍼스널케어 전문회사 뉴에이본 지분 100%를 1억2500만달러(약 1450억원)에 인수했다. LG생건은 뉴에이본을 발판으로 미국과 캐나다·남미·유럽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중국 등 아시아 시장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차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130년 전통의 에이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인수해 미주 시장 진출의 교두보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로맨티스트 차석용…”주말엔 아내와 데이트도”
냉정한 경영인 차 부회장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다. 적어도 아내에게는 말이다.
2020년은 차 부회장이 결혼 40주년을 맞는 해다. 차 부회장의 아내 신정희 씨는 2018년 한 매체의 시상식 자리에 참석해 러브스토리를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차 부회장이 고교 시절부터 신 씨를 무척 좋아해 “쫓아다녔다”고 한다. 차 부회장과 신 씨는 8년에 걸친 연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차 부회장과 사이에 1남 1녀를 둔 신 씨는 남편의 생활 방식에 깊은 신뢰를 보였다. 결혼 뒤 한결같은 수면 시간과 삶의 방향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차 부회장은 자신이 수십 년째 65㎏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으며, 술·골프·회식·의전을 지양한다고 밝혔다.
신 씨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남편은 식사를 알아서 간단히 챙겨 먹는 스타일”이라면서 주말에는 함께 여행을 가는 등 데이트를 한다고 전했다.
법조인이 꿈이었던 차 부회장은 경기고 졸업 뒤 고려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곧바로 군 입대를 했고, 제대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와 코넬대 MBA를 차곡차곡 마쳤다. 인디애나대학 로스쿨까지 들어갔으나 경제적 상황 때문에 글로벌 생활용품기업 P&G에 입사했다. 차 부회장은 긴 세월 미국생활을 하며 고생한 아내를 국내 법학 대학원에 보냈다.
차 부회장은 때론 감성적인 말로 임직원을 아우른다.
그는 신년사에서 최근 감명 깊게 본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언급하며 “평범하고 작은 사람들의 선의가 모여 우리 사회에 기적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라면서 “LG생건이 써나가는 기적 같은 역사는 우리가 회사를 위해 하루하루 쌓아 올린 작은 차이가 모여 이룬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람이 기적이 될 수 있을까요? 네, 우리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들입니다”라고 신년사를 끝맺어 직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LG생건 관계자는 "신년사는 모두 부회장께서 직접 준비하신다"고 전했다. 글로벌 명품 향해 도전장 LG생건은 차 부회장과 함께 창사 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차 부회장이 취임할 당시 2만9000원대였던 LG생건 주가는 2일 기준 126만1000원까지 뛰어올랐다. 1조원 수준이었던 매출도 7조원까지 불었다.
이제 차 부회장은 그 너머를 본다. 차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아시아를 뛰어넘어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겠다"고 밝혔다. LG생건은 한국과 아시아권 최고의 뷰티 기업이지만, 글로벌 내 비중은 적다.
LG생건의 목표는 로레알그룹·에스티로더그룹·LVMH그룹·시세이도그룹과 어깨를 견주는 것이다.
차 부회장은 이를 위해 “세계적 명품 브랜드 육성을 위한 화장품 사업 경쟁력 강화하겠다. 차별화된 생활용품 통합 프리미엄 브랜드 육성, 글로벌 진출과 미래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디지털 변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큰 것만 보고 가면 작지만 소중한 것을 놓칠 수 있다. 차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직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작은 것도 귀중히 여기는 마음을 강조했다. 차 부회장은 “작은 일도 경솔하게 처리하지 않는 ‘물경소사’의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것에 과감히 도전하고 깊이 있는 혁신을 지속하는 문화를 만들자”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