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7일 신년사에서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가 실현되도록 스포츠 교류를 통해 힘을 모아가길 바란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동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와 세계 탁구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들이 참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21일 국무회의를 열고 올림픽 서울·평양 공동유치 추진계획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고장난명(孤掌難鳴·한손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이다. 북한은 한국이 개최하는 스포츠 대회에 연달아 불참을 결정하고 있다. 이른바 ‘셀프 노쇼(No Show)’다. 북한은 다음 달 27일부터 3월3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동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에 불참을 밝혔다. 대한역도연맹은 20일 “북측이 6일 ‘다른 대회 준비 때문에 합류가 힘들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난해 11월 초청장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어 국제역도연맹(IWF)을 통해 다시 물었더니 이런 답변이 왔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3월22~29일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도 불참이 유력하다. 대한탁구협회는 “북한이 엔트리 마감일(18일)까지 국제탁구연맹(ITTF)에 참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한탁구협회는 ITTF를 통해 북측에 단일팀 구성과 대회 참가를 요청했다. 북측은 21일까지 묵묵부답이다.
ITTF는 남북한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조 추첨(2월22일) 전에만 북한이 참가 의사를 밝히면 출전을 특별히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동아시아역도선수권도 엔트리 마감은 26일이다. 하지만 탁구도, 역도도, 북한이 갑자기 입장을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 여자축구는 두 차례나 한국 행을 거부했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동아시안컵은 대회를 앞두고 돌연 불참을 통보했다. 다음 달 제주에서 열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도 출전을 포기했다. 북한은 지난달 아시아축구연맹(AFC)에 불참 공문을 보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1위인 북한 여자축구는 올림픽 출전을 노려볼 만한 전력인데도 ‘셀프 노쇼’를 결정했다.
축구도, 탁구도, 북한은 명확한 불참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내놓고 말은 못해도 각 종목 관계자 사이에선 “남북 관계 경색 탓에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를 포기하지 않나 싶다. 북한 당국 윗선 입김이 아니겠냐”는 말이 돈다.
임재천 고려대 교수(통일외교학부)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이 한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믿었던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못 했고, 스포츠 교류를 해봐야 소용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 대남관계 냉각기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 출전 중인 북한은 6월4일 한국 원정을 앞뒀다. 북한(2승2무1패)은 한국(2승2무)과 나란히 승점 8이다. 최종예선 진출 가능성이 있지만 ‘노쇼’를 불사할 가능성도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아직 북한에서 입장을 전해온 게 없다”고 전했다. AFC 관계자는 “만약 원정팀이 경기를 포기하면 0-3 몰수패를 당한다. 제3국 개최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홈팀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고려가 아닌 한 한국으로선 제3국 경기를 할 이유가 없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구성했다. 불과 2년 만에 남북 스포츠 교류는 끊겼다. 2023년 여자월드컵 남북 공동개최에 나섰던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12월, 유치를 철회했다.
워싱턴포스트 사이먼 데니어 도쿄 지국장은 20일 “문 대통령의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생각은 그림의 떡(pie in the sky)”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대북인식에 관한 한 다른 세상, ‘라라랜드’에 살고 있다”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 관계자 발언도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