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태어나자 할머니가 점 봐서 작명해주는 곳을 찾아가셨대요. ‘도시’ 또는 ‘나라’로 이름을 지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라 했대요.”
한국 남자축구의 2020년 도쿄 올림픽 본선행을 이끈 ‘도쿄 리’ 이동경(23·울산 현대)이 전한 이름의 사연이다. 그는 27일 끝난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우승 주역이다. 8강전, 4강전, 결승전까지, 날카로운 왼발 킥으로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2골·1도움)를 기록했다. 팬들은 도쿄 행을 이끈 이동경을 ‘도쿄 리’로 불렀다. 이름이 일본 도쿄의 한자 독음 ‘동경’과 같아서다.
28일 인천공항에서 뜨거운 환영을 받은 이동경은 “할머니가 좋은 이름을 지어주신 것 같다. 대회 기간 중 설날에 할머니께 전화드려 ‘돌아가면 찾아뵙겠다’고 했다. ‘동녘 동(東)’은 도쿄와 같지만, 경은 ‘빛날 경(炅)’이다. 지난해부터 몇몇 분이 ‘도쿄 리’로 불러줬다. 좋은 별명은 감사한데, 시국이 시국인지라”라며 웃었다.
할머니가 만약 로마와 파리를 골랐다면 ‘이로마’나 ‘이파리’가 됐을 수도 있었다. 원래 별명을 묻자 대구 출신 이동경은 사투리로 “이름의 ‘동’자 때문에 친구들은 ‘동팔이’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나가사키에서 뛴 중앙수비수 이상민(22·서울 이랜드)을 나가사키 짬뽕에서 따온 ‘짬뽕’으로, 1m94㎝ 장신 수비수 정태욱(23·대구)을 ‘짝대기’로 부른다. 이동경은 8강전 요르단전에서 1-1로 맞선 후반 49분, ‘버저비터’ 프리킥 골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눈물을 쏟았다.
에이스의 등 번호인 10번을 단 그는 “내가 못 넣으면 연장까지 가야 해서 자신감을 갖고 찼다. 자신 있게 대회를 준비했는데, 초반에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팀에 도움도 못됐다. 좋은 등 번호에걸맞은 경기력을 보여줘야 했는데, 심적 부담감을 느끼고 힘들었다. 그래서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이동경은 결승전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프리킥으로 정태욱의 헤딩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는 “원래 김학범 감독님이 (김)대원(대구)이한테 차라고 했다. 그런데 ‘제가 차보겠다’고 하자 허락하셨다. 평소 태욱이와 세트피스를 많이 맞춰봐 자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은 매 순간 열정적이고, 지는 걸 용납하지 않고, 철두철미하게 준비한다. 미팅 때 ‘우리는 무조건 우승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달라’고 하셨다”고 전했다.
이동경은 지난해 국가대표팀(A팀)에도 두 차례 뽑혔다. 그는 “A팀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책임감 등 많은 걸 배웠다. 특히 왼발잡이 이재성(28·홀슈타인 킬) 형, 권창훈(26·프라이부르크) 형을 유심히 봤다. 외국 선수 중에는 메수트 외칠(아스널)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축구 엔트리는 U-23 챔피언십(23명)보다 적은 18명이다. 이번에 오지 않은 이강인(19·발렌시아) 합류도 유력하다. 이동경은 “좋은 성적을 위해 최고 선수를 뽑을 텐데, 뒤지지 않게 단점을 보완하고 철저히 준비하겠다. A팀에서 강인이를 봤는데, 어리지만 놀랍고 배울 게 많은 동생이었다.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동경은 “이름 때문이 아니라, 올림픽은 꿈의 무대고, 온 국민이 기대하는 대회다. 2012년과 16년 TV로 보면서 응원할 때부터 올림픽은 내 큰 꿈이었다. 리우 올림픽 때 여자배구를 정말 재미있게 보고 열심히 응원했다. 만약 내가 도쿄에 간다면 두 종목 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좋겠다”고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