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였다. 1986년부터 무려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했다. 당시 해태는 다른 구단의 '공공의 적'이었다. 해태를 넘어서기 위해 각 구단이 겨울 동안 극기 훈련에 가까운 스케줄을 소화했다. 지금처럼 오프시즌 기간 훈련 제약이 크지 않았던 시대. 태평양은 오대산에 들어가 선수들이 얼음을 깬 뒤 물에 들어갔다. 화장터를 찾아 담력 훈련도 했고 해병대 캠프를 방불케 하는 훈련 일정을 짠 구단도 있었다. 정신력 강화와 체력 향상을 목표로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러나 해태의 아성을 넘어서는 건 쉽지 않았다. 그만큼 강했다.
최근 두산의 성적은 매년 상위권이다. 2015년부터 5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 진출했고 지난 시즌에는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화수분 야구를 바탕으로 순위표 가장 높은 위치에 항상 이름을 올린다. 해태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 '공공의 적'에 가깝다. 1980년대 유행한 단체 극기 훈련이 사라졌지만, 구단별로 오프시즌 훈련 프로그램이 선수들에게 전달됐을 거다. 그리고 두산의 아성을 무너트리기 위한 첫 출발점인 스프링캠프가 이제 막을 올린다.
두산은 이번 겨울 팀 상황에 약간 바뀌었다. 선발진을 이끌던 조쉬 린드블럼(33)과 세스 후랭코프(32)가 모두 팀을 떠났다. 린드블럼과 후랭코프는 지난 시즌 29승을 합작했다. 뚜껑을 열어봐야 하지만 외국인 투수 2명이 모두 교체된 건 작지 않은 변화다. 변수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반면 LG는 '원 투 펀치' 케이시 켈리(31) 타일러 윌슨(31)과 모두 재계약했다. 켈리와 윌슨은 2019시즌 평균자책점 4위와 6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두 선수 모두 180이닝 이상을 소화했을 정도로 위력적인 모습이었다. 키움도 마찬가지다. 기존에 있던 제이크 브리검(32) 에릭 요키시(31)와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LG와 키움은 외국인 타자가 바뀌었지만, 투수 쪽 교체가 없다는 게 중요하다. 두산의 강력한 대항마인데 변수를 최소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키움은 지난해 전력을 고스란히 유지했다. 거포 제리 샌즈(33)가 팀을 떠났지만, 박병호(34) 김하성(25) 이정후(22) 서건창(31) 등이 변함없이 팀을 지킨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 LG의 변수는 오프시즌 동안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영입한 정근우(38)다. 주 포지션인 2루수로 투입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무릎이 얼마나 버텨줄 수 있냐가 관건이다. 나이가 이제 30대 후반으로 적지 않다. 불안요소도 있지만, 안착만 한다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된다. 팀 성적의 키를 정근우가 쥐고 있는데 잘만 된다면 두산을 앞설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 밖에 NC도 눈여겨볼 구단이다. NC는 지난해 5월 주루 도중 오른 무릎 인대를 다쳐 시즌 아웃됐던 나성범(31)이 복귀한다. 나성범이 중심을 잡아주면 타선의 무게감 자체가 달라진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 미지수지만 건강만 보장하면 성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다. 지난해 아쉬움이 컸던 SK도 상위권에 있을 전력이지만 상황에 따라 NC가 더 높은 곳에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SK는 에이스 김광현(32)을 비롯해 외국인 투수 두 명(앙헬 산체스·헨리 소사)이 모두 바뀌어 1~3선발이 한 번에 팀을 떠나 공백이 발생했다.
겨울은 변수가 많다. 팀마다 그 변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린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시작되는 스프링캠프. 두산의 아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구단이 나올 수 있을까. 2020시즌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