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여파로 지난 4일 생산이 중단된 쌍용차 평택공장 조립2라인. 쌍용차 제공 국내 완성차 업계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의 직격탄을 맞았다. 감염자 확산으로 중국 내 부품공장들이 멈추면서 자동차 생산 차질이 현실화됐다. 이미 현대차와 쌍용차는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공장을 멈춰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국 지역에 편중된 부품 공급 라인의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멈춰 선 현대차 울산 공장
5일 업계에 따르면 신종코로나 확산의 여파로 중국산 핵심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현대차의 모든 공장이 7일부터 휴업에 들어간다.
가장 먼저 울산 5공장 1라인(G90, G80, G70 생산)과 울산 4공장의 2라인(포터)이 오는 11일까지 휴업한다. 울산 1공장(벨로스터, 코나)은 5∼11일, 울산 5공장 2라인(투싼, 넥쏘)은 6∼11일 휴업한다.
울산 2공장(GV80, 팰리세이드, 싼타페, 투싼)은 7∼10일 조업을 중단하며 울산 3공장(아반떼, i30, 아이오닉, 베뉴)과 울산 4공장 1라인(팰리세이드,그랜드스타렉스)은 7일부터 11일까지 쉰다.
다른 지역에 있는 아산공장(쏘나타, 그랜저)은 7∼11일 휴업하고, 전주공장도 트럭 생산라인은 6∼11일, 버스 생산라인은 10∼11일 라인 가동을 멈춘다.
이번 휴업은 중국 공장으로부터 차량에 탑재되는 '와이어링 하네스'란 부품을 조달하는데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유라코퍼레이션에서 공급하는 와이어링 하네스. 유라코퍼레이션 홈페이지 와이어링 하네스는 전선을 엮어 만든 배선 뭉치다. 차량 바닥에 모세혈관처럼 배선을 깔아야 그 위에 각종 부품을 얹어 조립할 수 있다. 차량 모델·트림(등급)에 따라 배선 구조가 모두 제각각이어서 호환이 불가능하고, 종류가 많아 관리가 어려워 국내 공장에서는 통상 1주일 치 정도의 재고를 확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는 와이어링 하네스를 경신과 유라코퍼레이션, 티에이치엔 등 한국 부품업체 3곳으로부터 조달받고 있다.
하지만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코로나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중국 정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 춘제 연휴 기간을 이달 9일까지로 연장했다.
이에 따라 경신 등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네스를 만드는 한국 부품업체의 공장 가동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현대·기아차는 부품 수급 차질로 완성차 생산 라인별로 탄력적 휴업도 하기로 했다.
기아차도 이번 주 생산량 조정을 통해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부품 조달을 확대하고, 협력업체의 중국 생산 재개시 부품 조달에 소요되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등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도록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쌍용차는 중국으로부터의 부품 수급 문제로 4일부터 12일까지 평택공장 가동을 멈춘다고 밝힌 바 있다.
쌍용차 역시 와이어링 하니스를 만들어 국내에 공급하는 레오니와이어링시스템코리아의 중국 옌타이 공장이 당국의 권유로 9일까지 가동을 중단하면서 부품 확보에 차질이 생겼다.
쌍용차 관계자는 "생산 재개 일시는 중국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도 오는 10일부터 공장을 닫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간은 이틀이나 사흘, 최대 일주일 정도로 알려졌다.
르노삼성이 공장 휴업에 동참하면서 한국GM을 빼놓은 국내 완성차 4개사가 전부 와이어링 하니스 부족으로 생산 차질을 겪게 됐다.
한국GM은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를 통해 다른 글로벌 업체로부터도 부품을 조달하고 있어 직격탄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GM 관계자는 "재고가 오는 10일까지는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추가 재고 확보분을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완성차 업계는 와이어링 하네스의 공급처를 늘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국내는 물론이고 동남아 등지에서 대체 부품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와이어링 하네스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일부 차종의 생산 중단을 막기는 역부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업체도 신종 코로나 '불똥'
신종코로나의 진원지인 중국 우한에서 자동차 사업을 하는 해외 자동차 브랜드도 직격탄을 맞았다.
우한은 GM·혼다·닛산·르노·푸조시트로앵 등이 공장을 둔 중국의 '자동차 메카'로 꼽힌다. 그런데 폐렴 환자의 확산에 따라 우한뿐 아니라 중국 전역으로 '공장 셧다운' 사태가 확산하고 있어 다수 자동차 업체가 "올해 장사는 망한 것 아니냐"는 암울한 전망을 하고 있다.
프랑스 르노자동차와 일본 혼다자동차 등 이곳에서 자동차 생산공장을 보유한 제조사는 이미 지난달 23일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폭스바겐그룹은 중국 베이징에 상주하는 약 3500명 정도의 근무 인력들을 대상으로 지난 3일부터 17일까지 재택근무 조처를 내렸다. 차량 인도 계획에는 큰 변화는 없지만, 생산 등의 일정은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선양에 생산 공장을 둔 BMW그룹은 이달 9일까지 춘절 휴가 기간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생산이 아닌 사무직 인력들은 지난 3일부터 업무를 시작했지만, 별도의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재택근무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상하이에 기가팩토리 생산공장을 둔 테슬라도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에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사전에 계획된 모델3 생산 일정이 신종코로나 때문에 약 1주일 이상 연기될 수 있다는 내부 전망이 나왔다.
현지에서 근무하는 자국 인력 빼 오기도 한창이다.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그룹은 우한에서 일하는 자국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귀국시키기로 결정했다. 피에르 올리비에 살몽PSA그룹 대변인은 “프랑스 정부의 제안에 따라 중국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귀국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혼다는 이미 30여 명의 공장 직원들과 가족들이 귀국 중이라고 전했다. 닛산 관계자도 구체적인 대피 계획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직원들 및 그 가족들의 건강과 안전이 중요하다”며 “신종코로나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으며, 예방조치를 포함해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 폭스바겐 등은 당초 예정돼 있던 중국 출장을 전면 취소하고, 직원들에게 중국으로 여행을 가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한에 위치한 자동차 생산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중국 방역 당국이 이동을 제한하면 자동차 물류 운송에도 차질이 생긴다"며 "최근 중국 자동차 시장 판매량은 감소하는 추세다. 이번 신종코로나가 이런 분위기를 가속한다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더욱 침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