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에이전트(FA) 투수 손승락(38)이 은퇴했다. 동갑내기 소방수 오승환(38·삼성)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시즌 초반 마운드에 오를 수 없다. 최고 소방수 자리를 놓고 '춘추 전국시대'가 펼쳐질 조짐이다.
오승환과 손승락은 나란히 KBO 리그 통산 세이브 1위와 2위에 올라 있는 투수다. 특히 오승환은 말이 필요 없는 역대 최고 소방수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마무리 투수를 맡았고, 9시즌만 뛰고 해외에 진출했는데도 277세이브를 쌓아 올려 통산 최다 기록을 갈아 치웠다. 2006~2008년과 2011~2012년에는 총 다섯 차례나 구원왕에 오르기도 했다. 그 후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간 일본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지만, 오승환의 아성에 도전할 만한 마무리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줄곧 국내에서 뛴 손승락은 271세이브로 오승환의 뒤를 6세이브 차까지 바짝 쫓은 상태였다. 전 소속팀인 넥센(현 키움)에서 2010년부터 전문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고, 2016년 FA가 돼 롯데로 이적한 뒤에도 꾸준하게 세이브 기록을 쌓아나갔다. 2010년과 2013~2014년, 2017년에 네 차례 세이브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손승락의 기록은 '271'에서 멈추게 됐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두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원 소속구단 롯데와 FA 협상에서 난항을 겪다 끝내 은퇴를 결심했기 때문이다. 손승락을 떠나 보낸 롯데는 스프링캠프에서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주로 선발 투수를 맡았던 김원중이 일단 1순위 후보다.
야구팬들의 관심은 '돌아온 최강자' 오승환이 6년 만에 다시 서는 KBO 리그 마운드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에 쏠려 있다. 다만 개막과 동시에 오승환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과거 원정 도박에 연루돼 받은 출장 정지 징계가 아직 남아 시즌 첫 30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한다.
그 사이 새로운 소방수들이 붙박이 1인자 오승환의 아성에 도전장을 던진다. 나이와 투구 스타일, 경력이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만만치 않은 실력의 소유자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SK 하재훈(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LG 고우석·키움 조상우·KT 이대은. IS포토 지난해 세이브 1위에 오른 SK 하재훈과 2위인 LG 고우석을 필두로 키움 조상우와 KT 이대은이 다시 구원왕 레이스를 펼친다. 하재훈과 이대은은 마이너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먼저 경험하고 지난해 KBO 리그에 첫 발을 내디딘 '늦깎이 신인'들. 일찌감치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있다. 강속구를 뿌리는 조상우와 고우석 역시 쾌조의 컨디션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베테랑 마무리 투수인 한화 정우람과 NC 원종현도 후배 소방수들의 추격을 노련한 피칭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관록의 소유자들이다. 지난 시즌 중반부터 소방수를 맡았다가 국가대표로도 발탁됐던 KIA 문경찬, FA 양의지의 보상선수로 NC에서 두산으로 이적했다가 시즌 중반 소방수 자리까지 꿰찬 '신데렐라' 이형범도 올해는 소방수 자리에서 시즌을 출발한다.
모두 지난해 실력 혹은 가능성을 검증 받은 투수들이다. 정우람과 원종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시즌 초반 혹은 중반에 전임 소방수들의 부진으로 자리를 넘겨 받았다가 천직을 찾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올해는 이들 모두 동시에 같은 출발선에서 스타트를 끊는다.
치열한 최고 소방수 경쟁에 5월 오승환까지 가세하면, KBO 리그는 모처럼 '소방수 풍년'에 함박웃음을 지을 수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각 팀 소방수들이 총출동해 1이닝씩 강력한 릴레이 피칭을 펼치는 풍경도 상상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