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의 맛이 깊어지는 시기다. 기름진 갯벌에서 조개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바닷물고기는 튼실해지며, 차가운 물 속에서 해초는 연하고 부드러워진다. 코로나19 여파로 사람 붐비는 곳으로 여행이 꺼려지는 요즘, 한산하고 겨울의 맛이 있는 국내 여행을 가보는 건 어떨까.
지금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바다의 겨울 진미를 느낄 수 있는 4곳을 추천한다. 전남에서는 보성 벌교 ‘꼬막’과 장흥 ‘매생이’를, 경남에서는 거제 ‘대구’와 통영 ‘물메기’를 즐길 수 있다.
제철에 즐기면 더 맛있는 맛, 벌교 꼬막·장흥 매생이
요즘은 냉장·냉동 기술이 발달해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제철에 먹는 맛에 비할 바 아니다.
벌교는 ‘꼬막’으로 이미 이름이 난 곳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맛이 일품인 꼬막은 지금의 맛이 가장 좋다.
우리가 흔히 먹는 새꼬막은 ‘똥꼬막’이라고 한다. 껍데기에 난 골의 폭이 좁고 표면에 털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새꼬막은 배를 이용해 대량으로 채취한다.
껍데기가 두껍고 골이 깊은 ‘참꼬막’은 갯벌에 1인용 ‘뻘배(널)’를 밀고 들어가 직접 캔다.
완전히 성장하는 데 새꼬막은 2년, 참꼬막은 4년이 걸린다. 값도 참꼬막이 새꼬막보다 5배 정도 비싸다. 새꼬막은 쫄깃해서 무침이나 전으로, 참꼬막은 즙이 많아 데쳐서 먹는다.
벌교에서 꼬막을 먹는 방법은 꼬막정식을 내는 식당에 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1인당 2만원 정도면 꼬막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벌교꼬막정식거리’가 따로 있을 정도다.
정식에는 온갖 꼬막 요리가 다 나온다. 데친 참꼬막, 꼬막을 듬뿍 넣고 부친 전, 갖은 채소를 곁들여 매콤하고 새콤한 회무침, 새꼬막을 푸짐하게 넣은 된장찌개 등이다.
요리를 즐긴 뒤 공깃밥을 주문해 참기름 한 숟가락 둘러 비벼도 별미다.
벌교에서 꼬막으로 점심 한 끼를 해결하고 나서, 바로 옆 장흥으로 자리를 옮겨 매생이를 즐겨보자.
매생이는 장흥과 완도, 고흥 등에서 나지만, 올이 가늘고 부드러우며 바다 향이 진한 장흥 내전마을 매생이를 최고로 친다.
내전마을에서는 모두 24가구가 매생이밭 35ha를 일군다. 매생이는 원래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채취하는 기간이었지만, 요즘에는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2월 중순께까지로 기간이 줄어드는 추세다.
남도 사람들은 매생이를 주로 탕으로 먹는다. 옛날에는 돼지고기와 함께 끓였다는데, 요즘은 대부분 굴을 넣고 끓인다.
민물에 헹군 매생이에 물을 붓고, 굴과 다진 마늘을 넣고 끓인다. 장흥 사람들은 매생이탕에 나무젓가락을 꽂았을 때 서 있어야 매생이가 적당히 들어간 거라고 말한다.
여기에 소금이나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 한두 방울과 참깨를 뿌려 낸다. 오래 끓이면 매생이가 녹아 물처럼 되기 쉬우니, 한소끔 끓자마자 불을 꺼야 한다.
뜨끈한 매생이탕 한 술이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바다 내음이 코끝과 식도를 파고든다. 정남진장흥토요시장에 가면 매생이탕과 매생이떡국을 내는 식당이 여럿이니 토요일의 장흥이 좋겠다.
뜨끈한 생선 살이 입에서 ‘사르르’, 거제 대구·통영 물메기
남쪽 겨울 바다를 주름잡는 생선이 바로 ‘대구’와 ‘물메기’다. 12월부터 식탁에 올라 이듬해 2월까지 미식가를 유혹한다.
일단 대구를 제대로 맛보려면 거제 외포항으로 가야 한다. 대구잡이 철이 되면 외딴 포구가 온종일 외지인으로 들썩거리는 항구다.
대구는 산란을 위해 겨울철 냉수 층을 따라 거제 북쪽 진해만까지 찾아든다. 외포항은 한때 전국 대구 출하량의 30%를 차지할 정도였다.
주말이면 외포항을 찾는 차량으로 진입로가 막힐 정도로 겨울 대구는 인기 높다. 포구 곳곳에 생선을 판매하는 좌판이 늘어섰고, 그 위로 대구가 줄지어 미식가를 기다린다.
이른 오전이면 포구에서 대구 경매가 열리기도 한다. 긴 아래턱, 부리부리한 눈에 70cm를 넘나드는 대구는 3만~4만원 선에 팔린다.
포구 한쪽에는 대구로 만든 음식을 내는 식당이 줄지어 있다. 외포항 식당에서는 대구튀김, 대구찜, 대구탕이 2만5000원에 코스로 나오며, 대구회와 대구전, 대구초밥을 내는 곳도 있다.
통통하고 부드러운 살이 사르르 녹는 대구탕 맛만 봐도 겨울 향미가 입안 가득 전해진다. 생대구와 곤이가 담뿍 들어간 대구탕은 비린 맛이 없고 담백하며 고소하다.
다양한 대구 요리로 배를 채운 뒤 포구를 거닐어보자. 고깃배 너머 대구를 손질하는 아낙네의 손길이 바쁘고, 말린 대구와 대구 알젓, 대구 아가미젓 등을 파는 진열대가 보인다.
거제에 ‘입 큰’ 대구가 있다면, 이웃 도시 통영에는 ‘못난’ 물메기가 있다. 물메기는 동해안 일대에서는 ‘곰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오전에 통영항여객터미널과 가까운 서호시장에 가면 살아 헤엄치는 물메기를 만날 수 있다. 못생겨서 한때 그물에 잡히면 버렸다는 물메기는 최근에 귀한 생선이 됐다.
예전에 통영의 겨울 별미 하면 굴과 물메기가 꼽혔는데, 남해안 수온이 올라가면서 작년부터 물메기 어획량이 많이 줄었다. 어른 팔뚝만 한 물메기가 서호시장에서 4만원 선에 거래된다.
강구안 옆 중앙시장 일대서도 물메기를 만날 수 있다. 시장 안 횟집과 해물탕집에서는 겨울이면 한 그릇에 1만5000원 선의 물메기탕을 낸다. 예전보다 값이 오르고 양은 줄었지만, 맑은 국물과 어우러진 겨울 물메기의 담백한 맛을 못 잊는 미식가들은 다시 찾기 마련이다.
팔팔 끓인 무와 어우러진 물메기탕은 살이 연해 후루룩 마시면 숙취 회복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메기탕은 2월을 넘어서면 ‘도다리국’에 배턴을 넘기니, 얼마 남지 않았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거제 대구, 통영 물메기’라는 공식이 굳어졌지만, 거제에서 물메기탕을 맛보고 통영에서 대구탕을 즐길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