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의 주역들이 금의환향했다. 영화의 첫 시작을 알린 그 곳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의 길고 영광스러운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생충'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박소담,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이 참석했다.
기자회견이 계획된 시간은 오전 11시. 이미 세 시간여 전부터 몰려든 취재진으로 기자회견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상파를 통해 실시간 중계까지 전파를 타며 '기생충'을 향한 뜨거운 관심을 방증했다.
같은 곳에서 제작보고회를 열고 '기생충'을 세상에 첫 공개한 봉준호 감독. 같은 곳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긴 생명력을 가지고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마침내 다시 이 곳을 오게 돼 기쁘다. 기분이 묘하다"는 첫 인사를 건넸다.
약 반년간 오스카 캠페인을 위해 전 세계를 누볐던 봉준호 감독은 "모든 영화가 오스카 캠페인을 열심히 한다. 북미 배급사 네온은 중소 배급사이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거대 스튜디오에 비해 열정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와 송강호가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 인터뷰가 600개 이상이었다. 관객과의 대화도 100번 이상 했다. 다른 영화들에 LA 시내에 거대한 광고판이 있고, 잡지에 전면 광고가 있다면, 우리는 아이디어와 똘똘 뭉쳐서 팀워크로 물량의 열세를 커버하며 열심히 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아직 한국 관객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오스카 캠페인에 대해서 "바쁜 창작자들이 잠시 일선에서 벗어나서 시간을 들여 이런 캠페인을 하고 스튜디오는 많은 예산을 쓴다. 그것이 낯설게 보인 적도 있었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작품을 밀도있게 검증하는 것이다. 세밀하고 진지하게 점검해보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에 오스카로 피날레를 장식하게 되는 거다. 오랜 전통을 가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기생충'은 어둡고 적나라하다. 분명 이는 대중적인 상업성과는 가까울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북미에서 지난해 개봉한 외국어영화 가운데 가장 큰 수익을 올리는 등 전세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봉 감독은 "코미디적인 면도 있지만, 빈부격차의 현대사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씁쓸함도 있다. 단 1cm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다. 그런 부분을 정면돌파하기 위해 만든 영화다. 그런 부분을 불편해하실 수 있겠으나, 그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당의정을 입혀서 달콤한 장식을 하면서 영화를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 솔직하게 그리려고 했던 것이 대중적 측면에서 위험해보일 수 이어도 이 영화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다행히 한국에서도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호응해주셨다. 오스카 후광과 상관 없이, 후보에 오르기 전에 이미 북미에서도 2500만 불 이상 역대급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 부분이 기뻤다. 수상 여부를 떠나 전세계 동시대의 많은 관객이 호응해줬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고 기쁨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봉 감독은 오스카 캠페인을 하며 재치 넘치는 수상 소감으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 가운데,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는 인터뷰 중 발언이 SNS 등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아카데미는 로컬 시상식'이라는 발언이 아카데미를 도발한 것이 아니냐는 다소 짓굳은 질문에 봉 감독은 "오스카가 처음인데 도발씩이나 하겠나"라며 웃었다. 이어 "영화제 성격에 대한 질문이 나와서, 아카데미는 미국 중심이라고 하며 슥 나온 이야기다. 미국 젊은이들이 트위터에 그걸 많이 올렸나보다. 전략을 갖고 하거나 이런 건 아니다. 대화 도중에 나온 거다"라고 설명했다.
'기생충'으로 근 1년간 전세계를 누빈 봉준호 감독은 곧바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간다. "'옥자' 이후 이미 번아웃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기세를 영혼까지 긁어 모아 작품을 찍었다"는 그는 "촬영 기간보다 더 긴 오스카 캠페인도 소화했다. 오늘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 마음이 편해졌다. '끝이 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마무리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 노동을 정말 많이 하는 사람인 건 사실이다. 일을 많이 했다. 쉬어볼까 생각을 했는데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쉬지 말라고 해서"라고 이야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봉 감독은 "5월 칸부터 오스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었다.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밖에 없고 그런 면이 있지만, 사실은 영화 자체가 기억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럽게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한다. 모든 배우들의 연기, 스태프들의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낸 장면들, 제 고민이 담긴 장면들이 오래 기억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기생충'은 전원백수인 기택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한국영화 최초로 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 종려상, 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외국어영화상, 73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을 수상해 한국영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비 영어 영화가 작품상 트로피를 품에 안은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다. 1984년 '화니와 알렉산더', 2001년 '와호장룡'과 함께 4개 부문 수상으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한 것은 '잃어버린 주말'(1946), '마티'(1956) 이후 역대 세번째다.
또한, 북미 영화계 주요 직능 단체상 4관왕을 달성하며 '최초의 역사'를 썼다. 26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영화 부문 앙상블상을 비 영어 영화 최초로 수상했고, 72회 미국 작가조합상(WGA) 각본상을 비 영어 영화 최초로 받았다. 미국 영화편집자협회(ACE) 장편 영화 드라마 부문 편집상 또한 비 영어 영화 최초의 영예를 안았다. 24회 미국 미술감독조합상(ADG) 현대극 부문 미술상을 아시아 영화 최초로 받았다.
2월 19일 기준 해외 영화제에서 19개의 트로피를, 해외 시상식에서 155개의 트로피를 받으며, 총 174개의 상을 수상했다. 그야말로 전세계가 '기생충' 열병을 앓은 셈이다.
영화가 첫 공개된 칸 국제영화제에서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기생충'은 칸 상영 후 외신의 호평을 넘어선 극찬을 받았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은 마음을 사로잡는 영화다. 2003년 '살인의 추억' 이래 봉준호 감독의 가장 성숙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발언"이라고 평했고, 인디와이어는 "봉준호 영화 중 최고다. 전작들을 모두 합쳐 자본주의 사회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공포에 관한, 현실에 단단히 발을 붙인, 재미있고 웃기면서도 아플 정도로 희비가 엇갈리는 한 꾸러미로 보여준다"고 찬사를 쏟아냈다.
칸에서 시작된 찬사는 세계 최대의,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도 계속됐다. 특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자 단순히 봉준호 감독 혹은 '기생충'의 영광이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성과로 평가됐다. AP통신은 "세계를 위한 승리(a win for the world)"라고 표현하면서 "할리우드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종류의 전진을 가능하게 했다"고 분석했다. 미국 CNN은 "'기생충'은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를 만들었고, 역사로 남게 됐다"고 보도하며 "봉준호를 위한 파티를 준비하라!"고 치켜 세웠다. 뉴욕타임스는 "'화이트오스카'에 대한 역사적인 승리다. 계급 투쟁을 이야기한 '기생충'은 유권자들이 미래를 동시에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고 집중 보도했다.
이처럼 최초, 최고의 역사를 써내려간 '기생충'은 세계의 영화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의 영화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역사적인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이 세계 영화 산업의 게임 체인저(Game-Changer)가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