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두바이에서 출발한 화물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거칠게 내동댕이 처지는 위탁수화물과는 달리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스럽게 내려진 약 2평 크기의 컨테이너 스톨(마방) 문이 열리고 나타난 건 놀랍게도 500kg에 육박하는 경주마 3마리였다.
지난 2월 27일 두바이 메이단 경마장에서 연이어 코리아가 울려 퍼졌다. 두바이월드컵 예선대회인 컬린 스테이크스 경주에 한국 경주마 3마리가 해외 원정 출전했기 때문이다. 부산 경마장을 대표하는 경주마인 ‘투데이’ ‘그레이트킹’ ‘백문백답’이 출전했다. 올해는 아쉽게도 결승전 티켓을 쥐지 못했지만, 이들에게는 한 장의 남은 티켓이 있다. 바로 경주마 항공 티켓이다.
한국에서만 작년 한 해 약 500마리의 말들이 비행기를 통해 해외로 오갔다. 예민하기로 유명한 경주마의 쾌적한 항공 편의를 위해 기상천외 특급 작전이 이뤄진다. 억 소리나는 가격의 경주마들의 억 소리나는 특급 항공서비스다.
매년 전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스타 경주마들이 억대의 항공 수송비를 들여 두바이로 몰려든다. 중동의 부호답게 두바이는 매년 월드컵에 출전하는 모든 경주마의 국제 수송비를 지원한다. 한국 경주마들 또한 1억원이 넘는 항공료를 지원받아 가벼운 발걸음으로 원정길을 나설 수 있었다.
경주마들의 출국은 공항 가는 길부터 이색적이다. 리무진 버스 부럽지 않은 약 3억원의 고가 무진동 마필 전용 트럭이 시속 80km 이하의 속도로 공항까지 ‘마님’을 모신다. 공항에 도착 후 3마리의 말은 2평 크기의 말 전용 항공스톨로 자리를 옮겨 항공기에 탑승한다. 스톨 바닥은 편안한 쿠션감을 위해 톱밥이 두껍게 깔려있으며 기내식인 최고급 건초가 항시 비치돼 있다.
경주마가 탑승한 스톨 옆에는 편안하고 안전한 비행을 책임지는 마필관리 전문가로 구성된 크루가 동행한다. 그들은 하루에 네 끼를 챙겨 먹는 경주마들의 기내식과 식수 및 간식을 제공한다. 난기류에 놀라 말이 난동을 부리기라도 한다면 부상의 위협이 닥칠 수 있기 때문에 크루들은 항상 상태를 예의주시한다. 번식기의 수말이 암말의 체취로 인해 흥분하는 일이 없도록 암수의 좌석을 떨어트려 놓거나 수말의 코 주위에 박하향이 강한 로션을 바르기도 한다.
경주마도 비행을 위해서 여권이 필요하다. 경주마 여권에는 말의 혈통, 마주, 신체적 특징, 예방접종 및 질병검사 내역, 입출국 기록 등 사람의 여권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해당 말의 생산국에서만 발행해주기 때문에 혹시라도 분실하게 된다면 해당 국가를 다시 방문해야 하는 만큼 철저하게 관리된다.
입국절차 또한 사람보다 까다롭다. 공항에 도착한 경주마들은 검역관이 직접 수송 차량으로 인도 후 자물쇠를 밀봉한다. 말은 곧바로 공항 외부에 위치한 검역 마사로 이동하고 검역관이 밀봉을 해제한 후 하차해 마방으로 인도된다. 또 수의사가 직접 마체를 검사하며 비행 중 이상이 생겼는지 아닌지 또한 확인한다. 철저한 방역을 위해 해당 국가에서 지정한 계류 기간 자가격리를 거친 후에야 활동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