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일 분데스리가2 홀슈타인 킬의 이재성(28)입니다. 전 지난 11일부터 독일 킬에 위치한 집에만 머물렀습니다. 팀 동료(슈테판 테스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거든요. 팀원 모두 27일까지 2주간 자가격리를 했습니다. 전 다행히 괜찮습니다. 무증상이었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하루하루 몸상태를 체크했습니다.
독일에서 함께 지냈던 어머니와 형이 한국으로 돌아가 홀로 지냈습니다. 전 자가격리 수칙을 준수했습니다. 14일간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습니다. 지인분이 장을 봐서 집 앞에 놓아줬고, 제가 집 문 앞에 내놓은 쓰레기를 대신 버려주셨어요. 저는 아주 가끔 바람 쐬러 테라스에 나간게 전부였습니다.
덴마크와 인접한 독일 북부도시 킬은 평소 날씨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원래 해가 잘 뜨지 않는데, 격리 기간에는 날씨가 좋더군요. 좋아하는 산책과 러닝은 꾹 참았습니다. 독일도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국민들에게 잘 당부해서 저도 신뢰했습니다.
집에서 어떻게 2주를 보냈냐구요? 유명한 선수들과 달리 우리집에는 별다른 트레이닝 시설이 없습니다. 그래도 구단에서 집으로 실내 자전거를 한대씩 보내줬어요. 맨 몸 근력 운동도 했습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최대한 즐기려했습니다. 독일어 공부도 했고, 같은팀 (서)영재와 영상통화하며 서로를 의지했습니다. 넷플릭스는 섭렵했습니다. 삼시세끼를 홀로 챙겨 먹어야해서 요리 재미에 빠졌습니다. 백종원 선생님 등 유튜버들의 요리 영상을 보며 여러 실험을 했어요. 볶음밥, 떡볶이, 호떡을 만들어봤습니다. 제 입에는 맞는데,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요즘 소셜미디어에 인생골을 올리는 ‘골 챌린지’도 했습니다. 올 시즌 첫 승 때 멀티골을 넣었는데, 그 중 첫 골 장면을 올렸습니다. 손을 씻은 뒤 두루마리 휴지와 공으로 리프팅하는 ‘스태이 앳 홈 챌린지’에도 도전했습니다. (백)승호(다름슈타트)의 지목을 받았어요.
유럽에서 뛰는 한국선수들은 모두 집에 머물며 서로 안부를 묻고 있습니다. 석현준(프랑스 트루아) 선수가 지난 13일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와서 걱정했는데, 최근 연락이 닿았을 때 괜찮아지고 있다고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팔수술을 받은 (손)흥민이는 최근 재활에 들어갔고, ‘서로 이 시간에 몸관리를 잘하자’고 했습니다.
분데스리가 2년차인 전 올 시즌 8골-6도움을 기록 중입니다. 독일 팬이 제 성을 따서 ‘리블링( Liebling)’이라는데, 독일어로 ‘내사랑, 자기야’란 뜻입니다. 그만큼 절 아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올레 베르너(32) 감독님은 저를 톱이나 오른쪽 윙에 세웁니다. 여러 포지션에서 뛰다보면 훗날 지도자를 할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2년 전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뒤 K리그 전북 현대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습니다. 연봉을 삭감하고 도전했지만, 결정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유럽에서 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유럽에 진출할 때부터 ‘언젠가 유럽 1부리그에서 뛰고, 챔피언스리그도 경험해보자’고 다짐했거든요. 물론 아직 목표일 뿐이고 가야할 길은 멉니다.
친정팀 전북과 대한민국이 그리울 때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도 항상 전북 경기를 챙겨봅니다. 지난 20일 네이처리퍼블릭과 함께 손소독제 1만개를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기부했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구, 경북 취약계층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었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분데스리가는 4월30일까지 중단됐습니다. 팬들 앞에서 축구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일지 다시 느낍니다. 팬들이 응원 메시지는 물론 과자도 보내주십니다. 얼른 이 시기가 지나고 서로 웃는 모습으로 팬들을 만날 생각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어느덧 자가격리 기간이 끝났네요. 산책과 러닝하러 나가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