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2013년 K리그1(1부리그)에는 한 명의 '왕'이 등장했다. 이름은 황선대원군. 그가 선보인 K리판 '쇄국정책'은 K리그 팬들을 뜨겁게 열광시켰다.
조선 말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이름을 따온 황선대원군. 황선홍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지칭하는 별명이다. 황 감독의 쇄국정책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구단의 사정이 좋지 않아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구단은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려면 국내 선수를 내보내라 했고, 황 감독은 자신의 제자들을 팔 수 없어 외국인 선수를 포기했다. 황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작된 계기다.
2013시즌 K리그1에는 역대급 외국인 선수들이 즐비했다. FC 서울에는 '데몰리션'이라 불리는 데얀과 몰리나가 있었고, 전북 현대에는 최고의 날개 레오나르도가 존재했다. 울산 현대의 하피냐, 수원 삼성의 산토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최전방을 책임질 때, 포항은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외국인 선수도 없었다.
외국인 선수 0명으로 시작한 2013시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외국인 선수들이 사라지자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성향을 완전히 버리게 됐고,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이 높아짐과 동시에 끈끈한 조화가 이루어지면서 포항은 최강의 팀으로 거듭났다. 국내 선수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호흡. '스틸타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스틸타카'는 세계 축구를 평정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의 포항 버전이다. 포항이 시도한 짧은 패스에 의한 공격축구는 그동안 K리그에서 보지 못한, 신선하고도 강렬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3시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포항은 강렬했다. 시즌 초 쇄국정책으로 7경기 연속 무패 행진(4승3무)을 달렸다. K리그1에서는 3승1무로 단독 1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에서는 1승2무를 기록했다. 외국인 공격수가 없지만 7경기에서 12골을 폭발시킨 포항이었다. 이런 놀라운 장면을 연출했던 시기, 2013년 4월 5일 일간스포츠가 황선대원군을 만났고, 이 만남은 1면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가장 궁금한 점. 외국인 선수 한 명도 없이 잘나가는 비결이다. 이에 황 감독은 포항의 '든든한 허리'를 꼽았다. 그러면서 두 명의 미드필더 이름을 거론했다. '명신 듀오'라 불린 이명주와 신진호. 황선대원군을 보필한 두 '충신'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왕과 함께 1면에 얼굴을 올렸다. 외국인 없는 포항을 최강으로 만든 공이 컸다.
황 감독은 "기성용과 구자철에 비해 화려함이 떨어진다. 그러나 내실이 튼튼하다"고 자긍심을 드러냈다. 신진호에 대해서는 "골키퍼를 빼고 다 뛸 수 있다. 머리가 좋아 어디에 세워도 금방 적응한다"고, 이명주에 대해서는 "패스 축구는 자칫 속도가 느려지면 지루할 수 있다. 시야가 좋은 명주가 중앙에서 템포 조절을 한다. 긴 패스도 정확해 빠른 축구도 가능하다"며 두 충신을 극찬했다.
처음부터 충신은 아니었다. 황 감독은 "팀에 처음 왔을 때 두 선수 모두 쓸데없는 동작이 많았다. 대학시절 자신들 중심으로 팀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 습관을 버리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시즌 초반 상승세. 황 감독은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초반일 뿐이다. 축구를 잘 한다는 칭찬에 취해 모든 것을 다 얻었다 생각하는 순간 죽음"이라며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허투루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황 감독의 의지는 시즌 끝까지 이어졌고, 큰 결실을 일궈냈다. 그 중심에는 여전히 충신들이 있었다. 아쉽게도 신진호는 2013시즌을 다 채우지 못한 채 그해 여름 카타르 SC로 임대를 떠났다. 이명주는 끝까지 황선대원군에 충성했고,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포항의 '에이스'는 단연 이명주였다. 그는 7골4도움을 기록했고, 경기 MVP를 6회, 베스트 11에 8회 선정됐다. 신진호가 떠난 자리에는 다른 충신들이 줄을 섰다. 황진성·김승대·고무열·박성호·조찬호 등이 맹활약을 펼치자, 황선대원군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절대권력을 자랑한 황선대원군은 결국 2013시즌 K리그1 우승컵을 손에 쥐었다. 포항은 최종전에서 울산 현대에 1-0으로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포항의 6년 만의 우승 그리고 포항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K리그 역사에서 쇄국정책을 볼 수 있는 마지막 시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