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스포츠가 멈췄다. 축구·야구·농구·골프·수영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관련 대회가 전 세계적으로 중단됐다. 심지어 올해 7월 개막 예정이던 ‘2020 도쿄올림픽’까지 내년으로 연기됐다. 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인 상황에서 선수와 팬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이에 반해 e스포츠는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초기에 중단됐다가 일부 종목의 정규 리그나 예선전이 재개됐다. 어느 스포츠보다 강력한 e스포츠의 ‘언택트(비대면)’ 특성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반쪽짜리’에 글로벌 대회 불발 가능성 등 걱정거리도 적지 않다.
LCK·오버워치 리그·PGS, 온라인으로 재개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e스포츠 대회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가 코로나19에도 진행되고 있다.
국내의 대표 LoL e스포츠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의 스프링 2라운드가 코로나19로 잠정 중단된 지 19일 만인 지난 25일 재개됐다.
방식은 서울 종로의 오프라인 경기장인 롤파크가 아닌 각 팀의 숙소에서 선수들이 온라인으로 접속해 진행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를 위해 주최사인 라이엇게임즈와 한국e스포츠협회는 각 팀 숙소의 PC 성능과 인터넷망 속도를 검점하고 사양이 떨어지는 PC의 교체를 지원했다.
또 경기 시 팀 숙소에 심판과 IT 운영 인력(2인 1조)을 파견했다. 이들은 숙소 방문 시 체온 측정과 마스크 착용, 손 소독 등 안전 체크리스트에 따라 감염 예방을 위한 조처를 하도록 했다.
해설진은 롤파크에서 중계하는데, 경기 상황만 중계하지 않고 숙소 선수와의 화상 및 전화 인터뷰도 진행하고 있다.
온라인 진행에도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29일 ‘페이커’ 이상혁이 속한 T1과 한화생명의 경기는 최대 동시접속자가 5만명을 넘었고, 누적 접속자는 115만명을 돌파했다.
생중계된 네이버·아프리카TV 등의 게시판에는 팬들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리는 등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페이커는 “숙소에서 온라인으로 진행해 심적으로 부담이 없다”고 말한 반면, 젠지의 김태민은 “숙소가 편안한 느낌은 있지만, 현장감이 없어서 적응이 안 된다. 하루빨리 팬 여러분의 함성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LoL e스포츠는 전 세계 12개 지역 중 8곳에서 온라인으로 재개됐다. 코로나19로 지난 1월 25일 정규 리그를 중단한 중국 LPL은 이달 9일, 유럽 LEC는 20일, 북미 LCS는 21일 각각 온라인 경기를 시작했다.
라이엇게임즈 관계자는 “LCK는 각 팀이 숙소 생활을 하고 있고 PC나 인터넷망에서 문제가 없어 온라인 진행이 가능했다”며 “현재까지 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리그도 지난 28일 첫 경기를 시작으로 두 달간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각 팀이 홈 경기장에 다른 팀을 초청해 진행하는 홈 스탠드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서울이 홈인 다이너스티는 이달 7일과 8일 양일간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경기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취소됐다.
블리자드 측은 “현재 각 팀이 거주하고 있는 세 지역을 기반으로 온라인 대회를 진행한다”며 “모두의 안전이 확보되고 현실적으로 이동이 가능하게 되는 대로 팀이 주최하는 홈 스탠드 대회 방식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블리자드의 하스스톤 e스포츠 대회인 ‘마스터즈 투어 LA’도 전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55만 달러(6억71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이번 대회에는 지난 21일부터 23일까지 43개국 총 346명이 온라인으로 참여해 우승자를 가렸다.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인 ‘펍지 글로벌 시리즈(이하 PGS)’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
펍지는 올해 총 4회의 PGS 중 첫 대회인 ‘PGS: 베를린’을 31일부터 4월 12일까지 독일에서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코로나19로 잠정 연기했다.
다만 이를 위한 지역 대표 선발전은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한국과 일본은 지난 14일 선발전을 마쳤고, 중국은 내달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스타크래프트2 첫 대회인 ‘GSL 슈퍼토너먼트 시즌1’은 지난달 5일 개막이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돼 이달 18일 서울 대치동 프릭업 스튜디오에서 무관중으로 시작됐다.
e스포츠가 멈춰선 정통 스포츠와 달리 계속 굴러갈 수 있는 것은 강력한 비대면성과 그동안 축적한 시스템 때문이다.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총장은 “e스포츠는 네트워크만 연결되면 세계 어디에 있든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라며 “이번 코로나19로 이런 장점이 다시금 확인됐다”고 말했다.
카트 리그는 온라인 재개 난항
온라인 개최가 어려운 e스포츠 종목도 있긴 하다.
넥슨의 ‘2020 카트라이더(이하 카트) 리그 시즌1’은 지난달 5일 서울 서초동의 넥슨아레나에서 개막했으며,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 경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같은 달 26일부터 무기한 연기됐고, 아직 온라인 재개 소식조차 전해지지 않고 있다.
카트 리그가 온라인 재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LoL 선수처럼 숙소 생활을 하는 선수가 거의 없고, 공정한 경기를 관리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보낼 심판진도 부족하다.
이번 카트 리그는 SK텔레콤이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해 기대를 모았으나 현재 4강전·결승전을 남겨두고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넥슨 관계자는 “아직 온라인으로도 리그 재개 시점은 미정”이라며 “선수들을 숙소에 모으는 것도, 심판을 배치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피파온라인4’의 새로운 e스포츠 대회인 ‘FIFA e컨티넨탈컵’은 아예 시작도 못하고 있다.
EA와 FIFA가 협력해 새롭게 출범하는 글로벌 e스포츠 대회로, 지역 예선전을 포함해 7개국에서 10개월간 열리는 4개 국제대회의 그랜드 파이널이다.
반쪽짜리에 글로벌 대회 불발 우려도
그나마 e스포츠가 온라인으로 진행될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선수들이 현장에서 팬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쪽짜리’라는 지적이다.
e스포츠팀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스포츠라고 한다면 경기장에서 팬들과 소통해야 한다”며 “경기 화면만 계속 보여주는 건 게임 스트리밍 방송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오프라인 결승전이나 글로벌 대회가 불발될 가능성도 높다.
2020 LCK 스프링의 경우 당장 오는 4월 16일 정규 리그 종료 이후 플레이오프 및 결승전 일정과 방식이 정해지지 않았다. 결승전은 오프라인에서 대규모로 진행됐지만 이번에는 무관중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대회도 취소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당초 오는 4분기에 중국 상해에서 롤드컵이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장담하기 힘들다.
올해 첫 배그 국제대회인 ‘PGS: 베를린’도 유럽의 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하면 개최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대회만 해서는 선수도, 팬도, 스폰서도 만족하기 어려워 규모가 큰 야외 대회나 글로벌 대회를 여는 것인데 올해는 힘들 것 같다”며 “이에 대비해 다양한 이벤트 대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