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벚꽃들이 길거리를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삼삼오오 바깥나들이를 약속하고 강으로, 산으로, 공원으로 모여야 할 4월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여의치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서 빈번히 감염되는 사례가 나오면서 야외 활동이 자유롭지 못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봄을 알리는 각 지자체의 축제들은 연달아 취소되고, 정부는 매일같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당부하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가 지겹고 지친 시민들은 하나둘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봄 축제는 멈췄지만, 봄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멈추지 못한 듯 보인다.
'사회적 거리두기' 어디로…야외 활동 나선 시민들
“마스크 쓰고 (자전거) 타야지! 안 쓰면 못타요.” 공원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출발하려는 아이에게 엄마가 마스크를 건네며 말했다.
얇은 외투를 걸쳐도 꽤 활동하기 좋은 기온이 찾아온 가운데, 지난달 28일 토요일에는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숲 공원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주차하기 위한 긴 줄이 만들어졌고, 성동구민체육센터 공영주차장은 ‘만차’ 표지판이 차를 가로막기도 했다.
오는 5일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정부의 지침이 무색했다.
방역당국은 야외활동을 하더라도 2m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2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산책하는 것은 감염의 위험이 낮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공원 등 야외에서 사람을 피했다 하더라도, 음식점이나 카페 등을 이용한다면 의미가 없어 보였다.
이날 성동구에 한 맛집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SNS(사회 관계망서비스)에서 유명세를 탄 카페는 시종일관 사람이 붐볐다.
날씨가 좋아 야외 활동을 나온 한 나들이객은 “봄 날씨에 나오긴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 카페는 자리 찾기가 힘든 수준이고, 사람이 많아 들어가기 찝찝해서 못갔다“며 발걸음을 돌렸다.
몇몇 가게들은 창문과 출입문을 활짝 열고 영업하기도 했다. 한 카페에서 문을 닫아도 되겠냐고 묻자, 가게 직원은 “손님들이 많아서 내부 환기 차원에서 문을 열어둔 거니 양해 바란다”고 답했다. 혹시 모를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환기’ 중인 듯 보였다.
전국 벚꽃 명소도 비슷한 상황이다. 경남 진해, 제주, 경기 용인 에버랜드,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등 주요 관광지는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는 게 답답했던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로 북적였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인파가 몰리면 야외라고 해서 절대 괜찮지 않다. 이미 봄꽃 명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여러 명 발생하면서 방역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최근 부산에서는 지인들과 차 한 대로 꽃 구경 나들이를 다녀온 60대 남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부산시 역학 조사 결과 두 사람이 지인 3명과 전남 구례군 산수유 마을에 함께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취소에 통제까지…벚꽃 축제는 내년에
전국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봄꽃 축제인 광양매화축제는 일찌감치 취소됐다. 3월 한 달에만 100만명이 찾을 정도로 큰 축제이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 조처였다.
하지만 축제 취소에도 지난달 6일부터 15일까지 방문 인원만 31만명에 달했다.
봄 하면 떠오르는 벚꽃 축제도 지역을 불문하고 잇달아 취소되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 벚꽃 축제인 ‘진해 군항제’도 57년 만에 취소됐고, 출입구도 통제됐다. 창원시는 경화역과 여좌천을 포함해 진해 주요 벚꽃 명소인 안민고개, 내수면연구소 제황산 공원 등에 대한 출입을 막고 있다.
경찰과 시청 직원, 자원봉사대 등 1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돼 매일 방문객을 통제하고 있고, 특히 방문객이 많이 찾는 여좌천 인근 주택가는 거주민임을 증명하는 확인증이 있어야 출입을 허용한다.
서울에서는 대표적으로 여의도, 석촌호수, 양재천 등 벚꽃 축제가 열리는 여러 곳에서 취소 소식을 전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사람들이 모이는 일을 자제해야 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축제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여의도 봄꽃 축제만 봐도 520만명이 다녀갔다.
하지만 축제를 취소한다고 해서 봄꽃이 계절이 왔음을 알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난 주말 벚꽃은 시민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큼 환하게 분홍의 자태를 드러냈다.
이에 각 지자체에서는 사람들의 벚꽃길 통행 자체를 막고 나섰다.
영등포구는 1일부터 여의서로 봄꽃길(국회의사당 뒤편) 교통 통제를 시작으로 보행로까지 전면 폐쇄하기로 했다. 4월 개화기가 오면 여의도를 찾는 상춘객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해 내린 조처다. 교통 통제는 1일부터 11일까지 11일간 이뤄지며 보도 통제 기간은 2일부터 10일까지다.
더불어 국회의사당~여의나루역~63빌딩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펜스 및 난간에 거치형 손 소독제가 설치되고, 여의서로 보도 구간 순찰을 해 무단출입도 방지하기로 했다.
석촌호수 벚꽃 축제를 취소한 송파구도 과감하게 석촌호수를 전면 폐쇄한다고 밝혔다. 오는 12일까지 폐쇄돼 54개 석촌호수 진입로에 166개 철제 안전펜스를 설치하고, 산책로를 13개 구간으로 나눠 2인1조로 통제요원도 둬 이동을 막는다.
다만 석촌호수에서는 거주지 내의 인근 지역주민들의 출근, 운동, 산책 등을 위해 오전 5시부터 9시까지는 일부 진출입로가 개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