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추신수(텍사스)는 생활이 몹시 궁핍했다.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던 당시 주급 350달러(43만원)를 받았다. 아내 하원미 씨와 사이에 첫째 앨런(추무빈)이 태어났지만, 기저귀 살 돈의 여유가 없었다. 세 식구 생활비로 턱없이 부족했다. 마이너리그 최고 레벨인 트리플A에서 받던 하루 식비 20달러(2만4000원)를 아껴 생필품을 사는데 보탰다.
눈물 젖은 빵을 먹은 추신수는 메이저리그에 우뚝 섰다. 클리블랜드, 신시내티를 거쳐 텍사스 유니폼을 입기까지 탄탄대로를 걸었다. 부와 명예를 모두 손에 넣었다. 2019년 텍사스에 받은 연봉만 2100만 달러(260억원). 프로 스포츠 계약을 전문으로 다루는 스포트랙에 따르면 팀 내 1위, 빅리그 공동 35위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벌어들인 연봉 총액만 무려 1억3000만 달러(1610억원)가 넘는다. 생활은 윤택해졌고 그사이 둘째 에이든(추건우) 셋째 아비가일(추소희)까지 가족도 늘었다. 환경이 바뀌었으니 어려웠던 시절을 잊고 살법하다. 그러나 추신수는 "마이너리그를 잊을 수 없다. 아직도 기억한다"고 회상한다.
추신수는 2일(한국시각) 메이저리그를 발칵 뒤집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에 따르면 추신수는 텍사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191명의 선수에게 모두 1000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총액만 19만1000달러(2억4000만원). 15년 전 받았던 주급의 540배가 넘는다. 미국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여파로 경기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 급여를 받지 못하게 된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불똥이 떨어졌다.
추신수의 최측근은 "최근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대구에 기부했을 때 마이너리그 선수를 지원하고 싶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추신수는 지난달 10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구지부를 통해 2억원을 기부했다. 이후 고민을 거듭한 끝에 통 큰 결정을 내렸다.
눈길을 끄는 건 엘리 화이트(26)다. 추신수의 최측근은 "화이트는 텍사스 40인 로스터에 포함될지 아닐지 어중간한 선수다. 그런데 메이저리그가 코로나19로 문 닫기 전 클럽하우스에서 동료들에게 '결혼하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야구에 집중하고 싶은데 수입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하는 얘길 추신수가 들었다"고 했다.
논-로스터 초청 자격으로 지난 1월 텍사스와 계약한 화이트는 추신수가 구상한 '텍사스 마이너리그 지원'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추신수는 화이트를 지원 대상에 넣었다. 더 나아가 한 달에 1100달러(136만원) 정도 되는 메이저리그 식비를 리그가 중단되는 동안 보내주기로 했다. "걱정하지 말고 야구에 집중하라"는 조언도 함께였다.
코로나19로 파행 운영이 불가피한 메이저리그는 연일 기부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프레디 프리먼, 제이슨 헤이워드, 카를로스 코레아, 다니엘 머피 등이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추신수와 같은 선택을 했다. 이 중 마이너리그 전체에 대한 지원을 약속한 건 추신수가 처음이다. 그는 "20년 전 한국에서 왔을 때 아무것도 없었다. 야구는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갚고 싶었다"고 몸을 낮췄다.
마이너리그 선수를 위한 지원, 15년 전 식비를 아껴 야구하던 추신수가 만든 기적 같은 '아메리칸 드림'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