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비하인드①] 'From 1982 To 1996' KBO의 역사는 왜, 어떻게 바로잡혔나
등록2020.04.13 06:00
사람들은 왜 야구를 '기록의 스포츠'라고 부를까. 왜 다른 종목보다 야구가 '기록'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할까. 이유는 하나다. 야구는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플레이 하나, 하나가 모두 기록지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유일한 종목이라서다.
KBO는 지난 2일 '1982~1996년 6168경기 기록 검증 및 데이터화 최종 완료'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사태로 팀간 연습경기조차 열리지 못하고, 언제 시즌을 개막할 수 있느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던 시국. 많은 야구팬들에게는 그저 쏟아지는 야구계 주변 소식들 가운데 하나로만 여겨졌을 수 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KBO 리그 첫 15시즌의 기록 검증과 데이터화 작업은 오랜 시간 KBO가 공을 들여 준비해 온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매 경기 KBO 기록위원이 작성하는 공식 기록지에는 투수가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모두 담긴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였는지, 볼이었는지, 인플레이 타구가 됐는지는 물론이고 헛스윙이었는지, 파울이 됐는지, 혹은 아웃이 됐어야 할 파울 타구를 야수가 잡지 못하고 실책이 돼 타격 기회가 이어졌는지까지 상세히 표기된다.
1점이 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한 팀이 2사 2루에서 적시타로 점수를 뽑았을 때, 기록지 안에는 어느 타자가 어떤 안타로 타점을 올리고 어느 주자가 홈을 밟았는지만 표시되는 게 아니다. 앞서 두 개의 아웃카운트는 어떻게 올라갔고, 주자는 어느 시점에 어떻게 루상에 나가 2루까지 밟았으며, 그 과정에서 양 팀이 공격과 수비에서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그 과정 하나, 하나에서 모두 의미를 찾아내는 게 바로 '야구'라는 종목의 진짜 재미다. 1982년부터 2019시즌까지, 38년 간 열린 수많은 게임의 기록이 지금까지 모두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 왔다.
과거에는 지금처럼 매일같이 전 경기를 TV로 중계하지 못했다. 프로야구 TV 중계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지상파에서 어쩌다 한 번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로 여겨졌고, 야구장을 찾지 못한 팬들은 집에서 라디오 볼륨을 높여 가며 야구를 귀로 듣거나 다음날 아침 스포츠신문을 통해 경기 결과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니 영상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과거 프로야구 경기의 숨겨진 순간들을 복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 경기의 기록지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뿐이다. 공식 기록지에 새겨진 자취 하나하나가 모두 40년 가까운 KBO 리그의 값진 역사다.
KBO가 그 '실록'을 다시 한 번 검증하고 데이터베이스로 남기기로 결정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국내 최고 규모와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야구는 현재 공식 통계업체 스포츠투아이와 손잡고 방대한 분량의 성적과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 KBO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선수 이름을 검색창에 적어 넣고 엔터키를 누르기만 해도 최근 성적부터 통산 성적, 상대 투수별 성적과 상황별 성적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경기 공식 기록원이 '뷰어'라는 이름의 전산 기록지에 경기 내용을 입력하면, 이 기록이 스포츠투아이로 곧바로 전송돼 디지털 형식으로 저장된다. 경기 후에는 수기로 입력한 기록지와 온라인 기록지를 비교해 곧바로 정확성을 검증한다.
그러나 KBO가 야구 기록을 온라인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리그 역사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2001년부터였다. 2000년까지만 해도 기록 관리 작업은 모두 수기로 이뤄졌다. 기록원이 '넷텀'이라는 전산 프로그램에 경기 기록을 입력하면 KBO가 이 자료를 일일이 종이에 프린트해 월 단위로 묶어 제본한 뒤 서고에 순서대로 꽂아뒀다. 심지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전산 입력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기록원이 경기 중에 작성한 기록지를 그대로 제본해 보관하는 수준이었다. 과거 경기의 기록을 찾아봐야 할 일이 생기면, 직원이 서고에서 해당 시즌과 해당 경기 기록지를 찾아낸 뒤 매번 계산기를 두드려 직접 집계해야 했다는 의미다. 힘들고 번거로운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한 일이라 그동안 공개돼 온 여러 기록에 크고 작은 오류가 생겼을 수 있다는 게 늘 고민거리였다.
그 어느 종목보다 기록의 가치에 무게를 두는 KBO 관계자들은 '프로야구 초창기 기록도 모두 전산으로 입력해 언제든 정확한 통산 기록과 통계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숙제를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그러자 스포츠투아이가 전산화되지 않은 시즌 가운데 가장 가까운 4년(1997~2000년)까지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에 고무된 KBO도 2004년을 기점으로 이전 15시즌(1982~1996년)의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서로 공식적인 협업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꼭 필요한 작업'이라는 공감대 하나만으로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다.
당연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이었다. 15년 간 열린 경기 수만 총 6168게임. 검증해야 할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1년도 아닌 한 달 치 경기 기록과 팀 순위, 선수 개인 순위 등을 제본해 놓은 B4 크기 파일의 높이가 웬만한 스마트폰을 세로로 세워 놓은 크기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한다는 사명감과 '야구 기록'에 대한 애착이 담당자들을 움직였다.
일단 기록위원회 위원들이 1982년 4월 프로야구 개막전을 시작으로 매 경기 1회초 원아웃부터 9회말 스리아웃까지의 내용을 차곡차곡 전산에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 후 KBO 홍보팀 전 직원과 스포츠투아이 기록 전문 인력들이 이 자료를 건네 받아 다시 한 번 공식 기록지와 비교하며 검수하고, 이전에 기록됐던 내용들의 오류를 잡아내는 검증 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과거 기록원의 오기로 잘못 집계된 기록이 총 16000여건 발견됐다. 대체적으로 무명 선수의 대수비 혹은 대주자 출전이 출장 경기 수에 포함되지 않거나, 경기 후반 대체 출장한 선수의 기록이 박스 스코어에는 선발 출장한 선수의 기록으로 잘못 표기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내로라하는 레전드 스타나 유명한 선수들의 기록이 오류로 소폭 조정되는 케이스도 나왔고, 반대로 홈런 기록은 오류가 단 한 개도 없었다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남정연 KBO 홍보팀장은 "아무리 옛 기록을 데이버테베이스화한다고 해도 그 기록 자체가 틀린다면 힘들게 작업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안타 하나, 삼진 하나도 틀리지 않은, 100% 정확한 공식 기록을 구축하기 위해 검증을 하고 또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 세월이 무려 17년이나 걸렸다. 참여한 직원들 모두 각자 맡은 업무를 해 나가는 가운데 틈을 내 작업에 참여하느라 처음엔 속도가 더뎠지만, KBO 리그 40주년인 2021시즌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우리 프로야구 역사가 4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전 경기 기록 데이터화를 완료하자'는 데 뜻을 모은 덕분이다. 남 팀장은 "40주년에 임박할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하게 되면 시간이 너무 촉박할 것 같아 '무조건 2020시즌 개막 전에 다 끝내자'는 목표를 세웠는데, 무사히 끝마치게 돼 다들 뿌듯해하고 있다"며 "제발 각 부문 통산 1위와 2위 주인공이 바뀌는 일만 없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웃어 보였다.
KBO는 이제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로 새롭게 정리된 기록들을 재작업해 각 선수별로 어떤 기록이 어느 시기에 어떻게 수정됐는지 상세히 분류한 자료를 만들고 있다. 프로에서 뛴 모든 선수가 자신의 기록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또 출범 40주년에 앞서 이번 작업의 결과물과 그간 쌓아 온 기록들을 토대로 한 'KBO 40년 기록 대백과사전'을 출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남 팀장은 "야구는 기록 위에 역사를 쌓아 왔고, 또 앞으로 계속 쌓아 갈 스포츠다. 한 번쯤 이렇게 모든 기록을 정리하고 바로 잡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점점 모든 수치들을 쉽게 찾고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기록, 가공된 기록에만 가치를 두는 경향이 생기지 않았나 싶었다. 물론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옛 기록이 올바른 뿌리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에 (기록 검증 작업을 통해) 좋은 토대를 마련하길 바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