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해 K리그를 포함한 한국 스포츠 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처럼 K리그 선수들의 급여 삭감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다. 선수협은 "축구연맹과 구단 그리고 선수협이 하루빨리 함께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인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토의를 나눴으면 한다"고 발표했다.
축구연맹도 환영했다. "K리그 위기 상황에서 선수협이 먼저 리그와 구단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연봉삭감 협의를 제안해 온 것을 환영한다. 합리적이면서도 실효성 있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선수협과 적극적인 소통에 나설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축구연맹과 선수협 실무진들이 먼저 이번 주중 첫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화가 오가고, 최대한 많은 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결론이 나오길 기대한다.
단, 이렇게 되기 위해서 정확한 '상황 파악'이 우선되야 한다.
K리그와 구단들이 실질적으로 어느정도 피해를 볼 것인 지에 대해 공감할 만한 자료가 필요하다. 지금 공개된 유일한 자료는 축구연맹이 발표한 575억원이다. 축구연맹은 "올해 축구연맹과 K리그 22개 구단의 전체 매출 손실액이 약 575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K리그 전체 매출액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추정치에 불과하다. 2개 구단은 축구연맹에 자료제출도 하지 않았다. 불완전한 통계를 가지고 피해 손실이 크니 선수들도 연봉 삭감에 동참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구단 마다 피해액이 다르다. 이 전체 금액을 보고 선수들에게 일괄적으로 연봉 삭감을 강행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고액 연봉 선수도 있지만 연봉 삭감 시 생계가 흔들리는 저액 연봉 선수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삭감 기준을 정하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상황 파악이 우선시 되야 한다.
유럽과 같은 기준을 놓고 행하는 것도 위험하다. 유럽 구단과 K리그 구단은 수입 구조가 판이하게 다르다. 유럽은 중계권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면 K리그는 모기업와 지자체 지원금이 가장 크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K리그 환경에 맞는 삭감을 위해서라도 정확한 상황 파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수협이 대화의 첫 번째 전제 조건을 구단들의 실질적인 재정 손실에 대한 근거자료를 요청한 이유다. 이는 선수협 스스로 정한 방식이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가 정한 가이드라인을 따르는 것이다. 선수협 긴급이사회에 참석한 이근호(울산 현대) 선수협회장 역시 "우선 코로나19로 인한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훈기 선수협 사무총장은 19일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정확한 사태 파악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축구연맹과 구단들이 얼마나 피해를 볼 것인 지에 대해 공감할 만한 자료를 보지 못했다. 유럽은 그런 자료들을 충분히 공개하고 있다. 축구연맹에도 정확한 자료를 요청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대화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분위기를 악용하는 사례는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축구연맹 한 관계자는 "선수협이 먼저 대화를 제안한 것을 환영한다. 어떤 의제로 대화를 먼저 시작할 것인 지 내부 논의를 하고 있다. 서로 필요한 정보를 터놓고 공유를 할 용의가 있다. '무조건 선수들 연봉을 깎아라' 이런 성격의 대화는 절대 아니다. 선수협의 요청을 들어보고, 어떤 자료가 필요한 지도 들어볼 것이다. 합리적인 대화를 통해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면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상황 파악 없이 연봉 삭감을 원하는 건, '강요'다. 구단과 선수들이 작성하는 표준계약서에는 천재지변에 따른 연봉 삭감 조항은 없다. 따라서 연봉 삭감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다. 스스로 선택했을 때 가치있는 일이다. 강압적으로 한다면 고통 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선수들을 희생의 도구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레알 마드리드의 토니 크로스처럼 연봉 삭감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코로나19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수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기에 심도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의견을 듣고 동의를 구하는 절차와 과정을 지나, 선수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박주호(울산 현대) 선수협 부회장도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경우에도 강요가 있어선 안 된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