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패션∙문화 기업인 한세예스24홀딩스가 30일부터 시작되는 황금연휴 기간에 직원들을 백화점 매장 판매 지원에 동원해 논란을 빚고 있다. 한세예스24홀딩는 한세실업·한세엠케이·한세드림·예스24·동아출판 등 패션과 문화콘텐트를 이끌어가는 기업 중 하나다. 일간스포츠가 단독 확보한 이메일과 공지에 따르면 한세예스24홀딩스 경영지원부 고위 간부는 각 계열사 부서장과 본부장들에게 연휴 기간 매장 판매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 간부는 "회장님께서 매장 지원 리스트를 보고 순회를 오실 예정이다. 어디를 가실지 모르니 자리를 지켜달라"면서 영업부서 등 현장 판매직과 무관한 사업부·생산부·지원부서의 직원들까지 돌아가면서 매장에 나올 것을 요구했다.
"회장님 오신다"…생산부∙사업부도 연휴 판매 동원
한세예스24홀딩스 경영지원부의 한 간부는 지난 27일 오전 각 계열사 본부장과 부서장에게 전체 메일을 돌렸다. 이 간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걷혀가고 있으나 아직 많은 패션 회사가 비상"이라면서 "이번 5월 황금연휴기를 맞이해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백화점 등 매장의 판매를 지원할 수 있도록 팀을 구성해달라"고 했다.
이메일에 따르면 이 간부는 법인별 영업부서 외에도 지원부·생산부·사업부 등에서 주요 매장과 점포를 선정해 지원을 나가도록 요구했다. 그러면서 "회장님께서 순회를 나가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간부는 다음 날인 28일 구체적인 지원 일정을 추가로 공지했다. 이에 따르면 팀장 직급 이상은 각 사업부별로 4~5명가량의 팀을 구성해 연휴 중 이틀 동안 매장을 순회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목표는 고객, 매니저와 대화하며 시장 조사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반 팀원들에게는 집에서 가까운 백화점 매장을 중심으로 연휴 중 하루는 참석해 판매 지원을 하라고 하달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업부별 팀 배정 시 팀별 1~2명 정도 배정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기간이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요구한 매장 지원 날짜는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로, 어린이날 5월 5일까지 이어지는 황금연휴 기간이다. 부처님오신날인 30일은 법정공휴일이고, 노동절인 5월 1일은 법정 휴일이다. 2~3일은 토요일과 일요일로 약정 휴일이다.
노무법인 노동과 인권 박성우 노무사는 "노동절 휴일은 휴일 대체가 불가능하다. 300인 이상 사업체이거나 기존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근무를 채택한 사업체라면 석가탄신일과 토요일, 일요일은 쉬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길 경우 휴일제도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만약 근로자가 휴일 근무를 동의하더라도 사업자는 반드시 휴일 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박 노무사는 "통상 휴일 근무는 통상임금의 50% 가산된 휴일 근무 수당이 지급돼야 한다. 휴일에 일하고도 이를 지급하지 않으면 이 역시 법 위반"이라고 했다.
관건은 휴일 근무가 사용자 측의 강요인지 직원의 동의로 이뤄진 것인지다. 박 노무사는 "회사 간부의 요구로 명시적인 동의없이 휴일 출근을 하게됐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동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청에 익명으로 근로감독청원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근로감독청원을 받은 노동청은 사안을 검토해 기업에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해결하라고 통보한다. 한세예스24홀딩스 수준의 기업에서 휴일 근무 강요가 이뤄졌다면 사정 당국의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엄연한 노동법 위반… 직원들은 한숨만
한세예스24홀딩스 소속 직원들은 갑작스러운 연휴 동원령에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한 한세예스24홀딩스 직원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저녁 6시까지 매장 근무를 강요하고 있다"며 "이마저도 미리 공지하지 않았다. 연휴를 3일 앞둔 27일에 공지를 해 직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매장 판매직이나 영업부서도 아닌 직원이 백화점에서 의류를 판매해야 한다. 특히 5월 1일은 '메이데이'인 노동절 아닌가"라며 "'아직 회장님이 어느 매장에 갈지 모른다. (회장님이 방문하는) 매장 지원자는 자리를 지키고 있고, 연휴가 끝나고 뒷말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공지도 받았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익명게시판 앱 '블라인드'의 한세예스24홀딩스 게시판은 회사 측의 휴일 매장 지원 요구로 시끄러웠다. 한세예스24홀딩스의 한 계열사 직원은 "인간적으로 휴일에 부려먹으려면 식대와 교통비라도 달라"고 하자 다른 직원이 "그건 준다더라. 눈물 나게 고맙다"고 썼다. 또 다른 계열사 직원은 "이번 연휴에 코로나19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뉴스에서도 난리 아닌가. 이 시국에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매장 매원이라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직원들은 가족도 없고, 계획도 없고, 그냥 까라면 가야 하나. 진짜 너무 우울해서 우울증 걸릴 거 같다", "(판매직도 아닌) 우리가 나간다고 매출이 달라지는가"라는 하소연도 눈에 띄었다.
한세예스24홀딩스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주요 회사의 비전과 미션을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한세예스24홀딩스는 '건강한 조직문화 구현 및 종업원 만족도 제고로 선망하는 기업상 수립'을 주요 미션 중 하나라고 밝히고 있다. 최근 사내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한세예스24홀딩스가 추구하는 가치와 다소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세예스24홀딩스 관계자는 "오해다. 과거에 영업부가 주말에 매장을 돌았던 건이 와전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세예스24홀딩스는 지주사로서 계열사 직원들에게 ‘휴일 근무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권유는 할 수 있으나 지시는 할 수 없다”며 “만약 그런 이메일이 외부에 유출됐다면 바로 잡는 정정 이메일이 다시 직원들에게 나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