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풍년 조짐이다. 외국인 타자로 고심했던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두산은 재계약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32·아이티), LG는 로베르토 라모스(26·멕시코)가 시원한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두산은 지난해 쿠바 망명자 출신 페르난데스를 영입했다. 페르난데스는 메이저리그(MLB)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래도 마이너리그에서 보여준 콘택트 능력을 눈여겨봤다. 페르난데스는 제 몫을 했다. 타율 0.344, 15홈런·88타점. 장타력은 다소 아쉽지만, 정확한 타격으로 최다 안타 1위(197개)에 올랐다. 타이론 우즈(1998~2001년)와 닉 에반스(2016~17년) 정도를 빼면 늘 외국인 타자로 고민했던 두산에서 모처럼 나온 성공사례였다.
두산은 페르난데스 재계약 여부를 고민했다. 김재환이 MLB에 갈 경우 홈런타자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페르난데스를 대신할 외국인 타자도 물색했다. 하지만 최종 선택은 페르난데스였다. 보장금액은 45만 달러(약 5억원), 성적에 따른 옵션이 45만 달러다. 지난해 성적을 고려하면 낮은 몸값이다.
페르난데스는 장타를 위해 근육량을 늘려 돌아왔다. LG와 개막 3연전(5~7일)에서 8개의 안타를 몰아쳤다. 8일 KT전에선 안타 1개로 주춤했지만 10일 경기에선 홈런 등 4안타·4타점을 올렸다. 타율 1위(0.591). 공격력 평가 지표인 WRC+(Weighted Runs Created·조정득점창출력)도 1위(304.7, 스탯티즈 기준)다.
외국인 타자 잔혹사라면 LG도 두산에 뒤지지 않는다. 3년 연속 풀타임으로 뛴 외국인 타자가 없다. 최근에는 제임스 로니, 토미 조셉, 카를로스 페게로 등 빅리그 경력이 있는 선수를 영입했지만, 부상과 부진이 이어졌다.
올 시즌을 앞두고 LG가 선택한 카드는 20대 유망주 라모스였다. 라모스는 콜로라도 로키스 유망주 중에서도 손에 꼽았지만, 팀 내 뛰어난 1루수 자원이 많아 기회가 없었다. LG는 지난해 트리플A에서 30홈런을 친 라모스의 장타력과 높은 출루율에 주목했다. 부상 경력이 없는 젊은 선수라는 점도 포인트였다.
개막 전까지 라모스에겐 물음표가 붙었다. 라모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지훈련 뒤 멕시코로 돌아갔다. 자율연습을 하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자가격리까지 거쳐 팀 연습량이 적었다. 연습경기에선 홈런 없이 타율 2할에 그쳤다.
하지만 개막과 동시에 힘찬 스윙을 시작했다. 5일 개막전에서 담장을 맞히는 2루타 2개를 치며 파워를 입증했다. 류중일 LG 감독은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조금만 더 날아가면 좋을 텐데”라며 홈런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4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간 라모스는 10일 창원 NC전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2회 첫 홈런에 이어 8회 두 번째 홈런까지 쳤다. 라모스의 장타가 터진 LG는 0-6에서 10-8로 승부를 뒤집었고, 3연패에서 벗어났다. WRC+ 3위(249.2)가 라모스다. 1루 수비도 기대 이상이다.
코로나19로 야구가 중단된 멕시코에도 라모스의 활약이 전해졌다. 라모스가 뛰었던 멕시칸 퍼시픽리그 팀 나란헤로스 데 에르모시요는 트위터를 통해 “라모스가 한국에서 자신의 파워를 증명했다”며 축하 메시지를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