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들이 공인구 포비아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트렌드가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두산과 KT의 시즌 두 번째 경기가 열린 10일 잠실구장. 홈런 6개가 터졌다. 9회 이후에만 3개가 쏟아졌다. 이날 다섯 구장에서는 그려진 아치는 총 17개. 2020시즌 개막 첫째 주에 기록된 홈런 개수는 61개다.
반발 계수가 줄어든 공인구가 도입된 2019시즌에는 같은 기간 동안 58홈런이 나왔다. 2020시즌이 3개 더 많다. 9일에는 세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경기가 우천으로 순연됐다. 이 시점까지 팀 홈런이 가장 많던 롯데와 NC가 한 경기를 덜 치렀다. 30경기 기준 예상 홈런은 개수는 67.8개.
돌아온 야구에 팬들은 열광한다. 모바일, 인터넷 중계의 동시 접속자 수가 한 경기에 200만 명에 육박할 때도 있다.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쏟아지고 있다. 홈런쇼, 타고 현상은 화두다.
시즌 초반이고 표본은 적다. 그러나 야구팬은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밀어친 스윙으로 담장을 넘기고, 비거리가 130~140m인 대형 홈런도 나왔다. 소위 '탱탱볼' 야구로 회귀한 게 아니냐는 우려다. 물론 반기는 시선도 있다.
공인구는 이미 1차 수시 검사 결과가 나왔다. KBO는 지난 7일 "경기사용구인 스카이라인스포츠 AAK-100의 샘플 3타(36개)를 무작위로 수거해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용품시험소에 의뢰해 검사했다"며 "모든 샘플은 합격 기준을 충족했다"고 발표했다. 반발 계수의 합격 기준은 0.4034~0.4234이다. 크기와 무게도 정상이라고 한다. 현장에서도 미온한 반응이다. 한 사령탑은 "특별히 체감되지 않는다"고도 전했다.
공인구는 문제가 없고, 홈런·타율·장타율은 모두 증가했다. 어떤 요인이 시즌 초반 타고 현상에 영향을 미쳤을까.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일단 타자들의 준비 상태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시즌을 준비할 기간이 늘었고, 외출이 자제되는 상황에서 개인 훈련에 매진한 선수가 많다. 일반적인 사고를 가진 선수는 대부분 웨이트트레이닝장으로 향했다.
한 젊은 선수는 "모임을 자제하자는 선수단의 공감이 있었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것도 지겨웠다. 경기장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했다. KT 간판타자 강백호도 "스프링캠프에서도 다스리지 못했던 보완점에 집중할 수 있던 시기였다"고 전했다. 자기 관리에 노하우가 있는 베테랑은 더 값진 시간을 보냈다.
반발력이 낮아진 공인구를 준비할 시간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한때 유행했던 어퍼 스윙 대신 레벨 스윙으로 수정한 타자가 많다. 히팅 포인트를 앞에서 두고 타격을 하는 타자가 상대적으로 공인구에 덜 영향을 받는다는 분석이 있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한 선수도 많다.
두 번째는 심리적 장벽이 무너진 점이다.
2019시즌 초반에도 새 공인구 여파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타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영향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담장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 타구가 워닝 트렉에서 잡히고, 외야 가운데를 갈랐다고 본 타구가 야수에게 잡혔다. '안타를 잃었다'는 허탈감은 다음 타석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자신의 스윙과 타격 지향점 믿지 못하는 마음이 생겼다. 변화를 준 뒤 오버 스윙이 됐고, 어깨가 빨리 열리다 보니 몸쪽 승부에 약해졌다. 악순환.
베테랑도 다르지 않았다. 프로 데뷔 20년 차이자 리그 대표 타자인 김태균(한화)조차 "(지난해는)결과가 좋지 않다 보니까 혼동이 왔고, 다른 방식을 찾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홈런 개수가 감소한 것은 공인구 탓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맞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 하던 대로 하면서 배트 중심에 맞추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심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스윙을 한 타자는 여파가 적었다. 새 공인구가 도입된 2019시즌에 KBO 리그에 입성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두산)는 "나는 처음부터 현재 공인구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차이를 모른다"며 타격 지향점에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페르난데스는 2019시즌 안타왕이다.
예상이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타구가 나오더라도 심리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자세가 생겼다. 전지훈련에서 미국, 일본 리그의 공인구로 라이브 배팅을 소화한 뒤 '내 스윙이 문제가 있던 게 아닌 것 같다'는 확신을 가진 선수도 있다. 전반적으로 공인구 포비아에서 벗어났다는 평가다.
마지막으로 불펜투수의 컨디션 난조다. 개막 첫째 주에 나온 홈런 61개 가운데 선발투수가 허용한 홈런은 33개, 불펜투수는 28개다. 선발은 284이닝을 소화했고, 불펜은 196⅔이닝을 막았다. 불펜 피홈런이 많다. 평균자책점(5.81)은 타고투저 현상이 이어지던 2018시즌 같은 기간 기록(3.95)보다 훨씬 높다.
두산 불펜진은 10일 KT전에서 10-4로 앞선 7회부터 투입됐지만, 역전을 허용했다. NC도 10일 LG전에서 6-0으로 앞서던 경기를 지키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불펜이 강하다고 평가받던 팀도 고전하고 있다. 이름값 있는 셋업맨이 줄줄이 무너졌다.
투수는 코로나19 여파로 길어진 준비 기간이 독이 됐다. 불펜은 더 그런 편이다. 선발 투수는 3월부터 등판 간격을 관리받았다. 개막 연기가 결정되면 투구 수를 조절했다. 이미 3월 초에 베스트 컨디션을 끌어올렸던 불펜투수들은 혼란이 왔다. 구속이 2월보다 더 떨어진 투수도 나왔다. 4월 21일부터 열흘 동안 진행된 연습경기에서도 주로 선발투수의 컨디션을 점검하는 데 중점을 뒀다.
타자는 따뜻한 날씨로 인해 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고, 불펜은 아직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후반에 홈런쇼가 나오고 있는 이유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