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돋보기] 유원상-유민상·조동화-조동찬·나성용-나성범…KBO 리그의 '드림 브라더스'
등록2020.05.27 15:13
KIA 내야수 유민상(31)이 두산 소속이던 2015년 4월. 데뷔 첫 타점을 끝내기 타점으로 장식한 뒤 팬들에게 인사하러 단상에 오른 그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LG 투수 유원상(34·현 KT) 선수의 동생으로 더 유명한 유민상입니다."
형 유원상과 동생 유민상은 프로야구 초창기 명 포수였던 유승안 전 경찰야구단 감독의 장남과 차남으로 먼저 이름을 알렸다. 유민상은 그때 "이건 정말 내 바람이고, 그냥 희망일 뿐"이라는 전제를 달면서 "꼭 한 번 우리 형과 프로에서 투타 맞대결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소원은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난 26일, 수원 KT-KIA전에서 마침내 이뤄졌다. KIA가 3-0으로 앞선 7회 마운드에 오른 유원상이 1사 1·2루서 타석에 들어선 동생 유민상과 맞닥뜨리면서 데뷔 후 첫 맞대결이 성사됐다. 유원상이 2006년 한화, 유민상이 2012년 두산으로 각각 입단했으니 둘 다 프로 유니폼을 입게 된 지 8년 만에 마침내 선의의 경쟁을 펼친 셈이다.
KBO 리그에 역대 두 번밖에 없던 명장면이다. 이전까지는 유일하게 형 정명원과 동생 정학원 형제가 투타 맞대결 기록을 남겼다. 1995년 9월 5일 전주 경기에서 태평양 마무리 투수 정명원은 9회 대타로 나온 쌍방울 정학원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다. 그 후 25년 만에 유원상-유민상 형제가 마운드와 타석에서 만났다.
이번에도 결과는 비슷했다. 투수인 형 유원상이 동생을 이겼다. 볼카운트 3B-1S로 불리한 상황에 몰렸지만, 5구째 내야로 높이 뜨는 유격수 플라이를 유도해 동생을 아웃시켰다. 이어 다음 타자 나주환까지 1루수 파울플라이로 잡고 추가 실점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
오랜 시간 프로야구 선수의 애환을 공유해 온 형제에게는 경기 결과와 별개로 평생 잊기 어려울 기념비적인 순간이다. 소원을 이룬 동생 유민상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간 뒤에도 한동안 기분 좋은 미소를 감추지 못한 이유다. 앞으로 역대 세 번째 맞대결이 기대되는 투타 매치업은 내야수 고장혁(KIA)과 투수 고영표(KT) 형제다. 고영표가 군 복무 중이라 내년 시즌 이후에나 기대해볼 만하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조동화 SK 코치와 조동찬 삼성 코치는 KBO 리그에서 가장 성공한 형제 선수로 꼽힌다. 체격도, 생김새도 많이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우애가 그 어느 형제보다 끈끈하다. 어린 시절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한 명만 야구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 오자 서로 "내가 양보하겠다"고 나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부모는 결국 둘 다 뒷바라지하기로 마음을 굳혔고, 형은 동료들이 쓰던 야구용품을 모아 동생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결과적으로 둘 다 프로에서 성공을 거두고 각자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하는 최고의 선택이 됐다.
나성용 KIA 코치와 NC 나성범 형제는 연세대 시절 포수와 투수로 배터리를 이뤘다. 인근 여대까지 '연세대 야구부 꽃미남 형제'로 명성을 떨쳤다는 후문이다. 둘은 나 코치가 LG 소속이던 2015년 6월 2일 마산 NC-LG전에 동시 출전해 나란히 홈런을 쳤다. 한 경기에서 홈런을 때려낸 역대 두 번째 형제 선수가 됐다.
최초 기록은 삼미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양승관-양후승 형제가 남겼다. 1986년 7월 31일 롯데전에서 양승관이 6회 솔로 홈런을 터트린 데 이어 8회 양후승이 형의 대타로 나와 2점 홈런을 작렬했다. 정수근-정수성 형제도 프로에서 쏠쏠한 활약을 했다. 둘 다 발이 빨라서 도합 601개의 도루를 해냈다. 형의 선수 생활이 더 화려했고, 동생의 선수 생활이 더 건실했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형제 선수들은 형이나 동생 가운데 한쪽이 훨씬 유명하다. 첫 형제 선수였던 구천서-구재서 쌍둥이 형제부터 그랬다. 구천서는 12년간 프로에서 활약했지만, 구재서는 6시즌 만에 은퇴했다. 정학원의 형 정명원, 구대진의 동생 구대성, 최영완의 형 최영필, 안영진의 동생 안영명도 형이나 아우보다 훨씬 더 이름을 날렸다. SK 최항은 같은 팀 간판스타인 형 최정의 뒤를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늘 '양훈의 동생'으로 더 유명했던 양현은 키움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태며 이름을 알리고 있다.
2016년에는 롯데 박세웅과 KT 박세진 투수 형제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둘 다 2년 간격으로 신생팀 KT에 1차 지명됐지만, 박세웅이 롯데로 트레이드되면서 팀이 갈라졌다. 박세웅과 박세진은 그해 4월 28일 상대 팀으로 나란히 같은 경기에 등판하는 첫 기록을 남겼다. 박세웅이 롯데 선발, 박세진이 KT 불펜이었다. 이어 7월 27일 각기 다른 구장에서 나란히 선발 투수로 출격했다. 롯데 3선발이던 박세웅은 LG전에 나섰고, 박세진은 KIA를 상대로 데뷔 후 첫 선발 등판 기회를 잡았다.
형제 투수의 한 날 한 시 선발 등판 역시 이들이 처음은 아니다. 같은 해 6월 10일 KT 정대현(현 키움)-KIA 정동현 형제가 각각 넥센전과 삼성전에 선발 등판하면서 한 달 먼저 첫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희비는 엇갈렸다. 정대현은 호투했지만 승리는 올리지 못했다. 정동현은 5⅔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선발승으로 장식했다.
이 외에도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윤동배-윤형배 형제가 현역 시절 다섯 차례 같은 날 등판한 적이 있다. 동생이 선발 투수로 나선 날 형이 불펜으로 등판한 경기가 대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