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투수 김정빈(26)은 지난 2월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서 이런 희망을 공개했다. 2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한 올해는 반드시 불펜의 핵심 투수로 자리잡고 싶다는 의미였다.
지난해 SK 마운드는 앞과 뒤 모두 강했다. 특히 7~9회를 책임지는 불펜의 서진용-김태훈-하재훈은 '서태훈 트리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면서 리그 정상급 존재감을 뽐냈다. 그러나 올해는 부동의 에이스 김광현이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와 계약하면서 이 트리오의 허리인 김태훈이 선발진으로 빠져 나갔다. 김정빈은 바로 그 공백을 자신이 메워보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다만 그 앞에는 "당장은 어려울 지 몰라도"라는 단서가 붙었다.
3개월 여가 흐른 지금, 김정빈의 바람은 예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뤄진 모양새다. 그는 지금 SK 불펜에서 가장 기복 없이 활약하는 투수다. 1일까지 올 시즌 12경기에서 12⅓이닝을 소화하면서 평균자책점이 0.00. 볼넷 4개를 내주는 동안 삼진은 14개나 잡았다. SK가 시즌 첫 4연승 행진을 한 지난달 28~31일 기간에도 활약이 눈부셨다. 3경기에 나와 3⅔이닝을 던지고 홀드 두 개를 챙겼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SK의 반등에 가장 듬직한 '믿을 구석'이다.
올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그 누구보다 남달랐다. 상무에서 군복무를 하는 동안 70㎏대 초반에 불과했던 몸무게를 90㎏ 이상으로 불렸고, 웨이트 트레이닝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쏟았다.
스프링캠프에서는 룸메이트인 팀 선배 박종훈에게 매일같이 야구 일기를 쓰는 습관을 배웠다. 처음에는 박종훈의 일기 내용을 그대로 필사하면서 마음가짐을 배워 나갔고, 나중에는 스스로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기량과 훈련 상태를 매일같이 복기해 나갔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지금 마운드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마음먹은 대로 잘 되니 자신감도 붙었다. 그는 "입대 전엔 볼넷을 많이 줬고, 그러면서 또 기가 죽고 눈치를 보느라 야구가 더 잘 안됐다"며 "지금은 군복무를 마쳐서인지, 그냥 나이를 먹어서인지 눈치를 별로 안 보게 된다"고 웃어 보였다.
또 "최상덕 투수코치님께서 '안좋을 때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네가 찾아야 할 밸런스만 생각하면서 던져라'고 조언해주신 게 제구에 큰 도움이 됐다"며 "마음을 다르게 먹고 코치님께서 알려 주신 내게 맞는 투구폼과 기본기를 반복 훈련하니 많이 좋아진 것 같다"고 털어 놓았다.
2013년 입단한 뒤 가장 빛이 나는 시즌. 아쉬움이 있다면 팀 성적이 썩 좋지 않아 동료들과 함께 마음껏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가족들과 몰래 휴대폰으로 연락할 때만 좋은 티를 내고 있다"고 웃어 보이면서 "그냥 마운드에 나갈 때마다 잘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 임무에 맞게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고 거듭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