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동차 정책에 수입차 브랜드들이 남몰래 웃고 있다. 하반기 승용차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의 경우 고가 수입차에 가장 큰 혜택이 돌아가는 데다, 전기차 보조금 역시 미국에 본사를 둔 테슬라가 절반가량을 가져가고 있어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내수를 진작하려고 개소세를 낮춘다면서 고가의 수입차가 더 큰 할인 혜택을 누리게 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인지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또 전기차 보조금의 가장 큰 수혜를 누리고 있는 테슬라가 과연 한국 경제에서 '일자리 증대' 등 상응하는 기여를 하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금으로 저렴해지는 수입차
1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다음 달부터 판매되는 승용차에 3.5%의 개소세를 적용하기로 했다.
정부는 개소세를 줄곧 5%로 유지해오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어려워지자 2018년 7월 19일부터 3.5%로 낮췄다. 코로나19가 불거진 지난 3월부터는 1.5%로 개소세를 낮추고 인하 상한선을 5%로 계산했을 때와 비교해 100만원 이내로 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개소세를 다시 3.5%로 올리며 최대 인하폭 100만원 한도를 없앴다.
이에 따라 출고가 3000만원짜리 차를 기준으로 하면, 정상 세율(5%)을 적용할 경우 150만원인 개소세가 3~6월 50만원으로 100만원 감면됐다가 7월부터는 105만원으로 55만원 늘어난다.
반면, 출고가 1억원짜리 차는 정상 세율 500만원에서 3~6월 400만원으로 저가 차종과 동일한 개소세 감면을 받았으나, 7월 이후에는 350만원으로 오히려 50만원 줄어든다. 감면 한도가 사라지면서 차 가격이 비쌀수록 감면 혜택이 확대되는 구조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개소세 인하가 연장된 점을 반기면서도 고가의 수입차에 유리하게 조정된 것은 아쉽다는 반응이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1만대 이상 팔린 1억원 이상의 고가차량은 90% 이상이 수입차"라며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은 국산차는 가격이 올라가고 고가의 수입차가 오히려 개소세 인하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리게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입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까지 판매가 1억원 이상 승용차가 1만대 이상 팔렸다. 가격대별로 1억∼1억5000만원이 8257대, 1억5000만원 이상이 3345대다. 작년 같은 기간의 5307대와 2296대에 비하면 각각 55.6%와 45.7% 뛰었다. 특히 초고가 브랜드인 람보르기니는 올해 들어 판매량이 265% 증가했다.
이는 내수 진작이라는 정부의 정책 목표와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르노삼성차, 쌍용차, 한국GM 등이 국내에서 생산한 차의 판매가 늘어야 부품업체를 비롯한 연관 산업이 수혜를 누릴 수 있다"며 "국내 고용을 수반하는 자동차 산업을 활용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생산한 차의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친환경차 보조금 쓸어 담는 테슬라 고가의 수입차 업체들과 더불어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역시 정부의 자동차 정책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테슬라는 국내에서 국가와 지자체에서 주는 전기차 보조금을 받고 있다. 올해 테슬라 모델3 구매 시 지원되는 국가 보조금은 최대 800만원으로 전기차 보조금 상한(820만원)에 가까운 수준이다.
1억원이 훌쩍 넘는 모델S도 보조금이 최대 771만원으로 코나(경제형) 766만원, 니로EV(경제형) 741만원, 쏘울 전기차(도심형) 744만원과 비슷하거나 더 많다.
이로 인해 테슬라는 올해 국내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자동차 데이터 연구소인 카이즈유 조사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테슬라 판매량은 4070대다. 벤츠와 BMW에 이어 수입차 판매 3위에 해당한다.
국내 전기차 시장만 보면 테슬라의 점유율은 46.1%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급한 전기차 보조금의 약 45%를 테슬라가 가져갔다는 얘기다. 이 추세로 판매가 계속되면 상용전기차 등에 투입되는 보조금을 제외하고 테슬라로 흘러 들어가는 세금이 2000억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일부에서는 정부의 막대한 국가 보조금 지원을 받는 테슬라가 과연 한국 경제에서 '일자리 증대' 등 상응하는 기여를 하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는 상하이에 거대한 생산공장을 가동하는 것과 달리 국내에는 생산시설이 없는 '통신판매사업자'로 활동하고 있다"며 "테슬라의 국내 일자리 기여도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오히려 테슬라는 우리 국민 세금에서 나온 보조금을 받으면서도 국내 소비자를 차별하고 있다는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중국 등 해외에서는 값을 내려 전기차를 팔면서도 유독 한국에서는 고가정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테슬라는 미국에서 보급형 전기차 ‘모델3’ 가격을 2000달러(약 240만원) 내렸다. 모델3의 기본 판매가는 3만9990달러에서 3만7990달러(약 4553만원)로 떨어졌다. 중국에서도 지난 4월 모델3 판매가를 인하했다. 기존 32만3800위안에서 29만 위안(약 4909만원)대로 10%가량 떨어뜨렸다.
반면 국내에서는 모델3 기본 가격이 5369만원으로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모델S 등 고급 모델은 가격을 570만원 내렸지만, 생색내기용이라는 비판도 있다. 국내에서 팔리는 테슬라 모델 중 96%가 ‘모델3’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인하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테슬라는 자사 전기차 전용 급속충전소(슈퍼차저)를 무료로 제공했는데, 유료 전환 계획을 밝히면서 자동차 가격 인하 효과는 더 적어진다는 견해도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수입 전기차에 너그러운 한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지속하는 한 테슬라가 국내에 판매 비중이 높은 모델3 가격을 인하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며 "이로 인해 테슬라에 한국 시장은 ‘거의 잡은 물고기’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