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류 공격수'는 내게 고맙고 기쁜 별명이다. 계속 그렇게 불리기 위해 더 좋은 모습 보여주려 노력하겠다."
포항 스틸러스에는 '일류'가 있다. 이름만 일류가 아니라 실력도, 인성도 '일류'인 일류첸코(30·독일)는 자신의 별명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곤 검지를 치켜 들었다.
포항의 '1588' 외인부대는 시즌 개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포항 유니폼을 입고 하반기 완델손과 함께 맹활약을 펼친 일(1)류첸코-팔(8)로세비치, '18'라인에 오(5)닐과 팔(8)라시오스가 합류해 최강의 외국인 선수 라인을 구축했다. 주축 선수들의 군 입대까지 겹치면서 얇은 선수층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포항으로선 '1588'의 활약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한 기대에 부응하듯, 1588의 활약은 시즌 초반 포항이 상위권에서 버텨내는 힘이 되고 있다. 특히 일류첸코는 포항이 자랑하는 '일류 공격수'답게 8경기 6골 3도움으로 맹활약하며 득점 단독 2위에 올라있다.
지난달 1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2020 K리그1 부산 아이파크와 포항 스틸러스의 경기. 전반 23분 포항 일류첸코가 골을 넣고 '덕분에 챌린지' 포즈로 골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일류첸코에 대한 평가는 내부에서 더 뜨겁다. 매 경기 팀에 활력이 되어주는 득점을 올려줄 뿐만 아니라 인성, 생활 태도, 동료들과 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일류'라는 평가다. 포항 관계자는 "독일인이라 그런지 매사에 진지하고 성실한 면이 있다. 새로 합류한 오닐과 팔라시오스가 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군기반장' 역할도 한다"고 귀띔했다. 포항의 외국인 선수들이 끈끈한 '케미'를 자랑하는 이유다.
그야말로 안팎으로 모두 '일류'인 일류첸코의 슬기로운 일류생활이 궁금했다. 그래서 지난 17일 송라 클럽하우스에서 일류첸코를 만났다. 전날 7라운드 전북 현대전 1-2 역전패의 아쉬움이 고스란히 남은 얼굴로 나타난 일류첸코는 "패배보다 중요한 선수 세 명을 부상으로 잃었던 게 아쉽다. 경기 운영도 잘했고 선제골도 넣었는데, 동점골 내주고도 잘 버티다가 마지막 코너킥에서 집중력이 한 번 무너져 경기에 진 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며 "8라운드 강원 FC전이 중요하다. 반드시 승점 3점을 가져와서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자신의 각오를 증명하듯, 일류첸코는 20일 홈에서 열린 강원전에서 후반 15분 페널티킥 선제골을 터뜨리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K리그1, 그리고 포항에서 맞는 두 번째 시즌. 일류첸코에게 '2년차 징크스' 같은 건 없었다. 일류첸코는 "지난해 처음 K리그에 왔을 때는 독일에서 휴가를 마치고 약 2주 정도 훈련하고 왔기 때문에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동계훈련 기간이 매우 길어졌고 힘들었지만 훈련을 꾸준히 소화해 큰 도움이 됐다. 몸 상태를 많이 끌어올린 것이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나는 전형적인 공격수, 9번 스트라이커 타입이다. 공이 오면 지켜내고 연계해주고, 공중전에서도 부딪혀줄 수 있다. 이런 장점을 살려 포항을 위해 잘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일류첸코는 "올 시즌은 시작이 좋다. 아쉬운 점이라면 3라운드 FC 서울전과 7라운드 전북전 두 경기다. 두 경기 모두 최소한 승점 1점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 경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세트피스에서 무너진 게 아쉽다. 집중력을 갖고 승점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경기를 놓쳐서, 지금 생각해도 쓰라릴 정도로 기분이 좋지 않은 패배였다"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리 팀은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팀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20일 강원전 골을 넣고 환호하는 일류첸코의 모습. 한국프로축구연맹 결과는 2-0 완승으로 끝났지만, 강원전을 앞두고 김기동 감독을 비롯한 포항의 모두가 가장 걱정한 부분은 팔로세비치의 부상 결장이었다. 전북전에서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한 팔로세비치는 7월 초중순까지 결장이 예상된다. 일류첸코는 "아무래도 팔로세비치의 부상으로 인해 부담이 있다. 팀적으로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그의 공백을 우려했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도 압박감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축구는 팀 스포츠고, 그동안 기회를 받지 못했던 선수가 우리가 몰랐던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며 "나나 팔로세비치만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팀이고, 팀 모두 책임감을 갖는다면 위기는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다"고 듬직한 면모를 과시했다.
강원전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포항은 이제 다음주 '프라이데이 나잇 풋볼' 광주 FC와 경기에서 연승에 도전한다. 일류첸코 역시 광주전에서 상대 골문을 정조준할 예정이다. 9골로 앞서 가는 주니오(울산)를 추격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3라운드 서울전을 제외하면 부산전 2-0 승, 인천전 4-1 승, 상주전 4-0 승, 그리고 강원전 2-0 승까지 일류첸코가 골을 넣은 경기에서 포항이 모두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그의 골이 절실히 필요하다. 일류첸코 역시 자신의 개인 성적보다는 팀을 위해 골을 넣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일류첸코는 개인 성적보다 팀의 승리가 최우선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개인적인 목표는 아예 없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개인 타이틀 수상에 대해 욕심을 부려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단언한 일류첸코는 "가장 중요한 건 팀이 승리하는 것이다. 공격수인 만큼 기회가 오면 골을 넣어야 하고, 또 많이 넣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것도 다 팀을 위해서다. 만약 옆의 동료에게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패스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개인적인 기록에 대한 욕심이 없는 만큼, 일류첸코가 자신의 활약을 가늠하는 지표는 팬들의 사랑이다. 그에게 붙은 '일류 공격수', '일류캄프(일류첸코+베르캄프)' 같은 별명은 일류첸코를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팬들이 자신을 '일류 공격수'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일류첸코는 "팬들이 이런 별명을 지어주고, 좋은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건 그만큼 내가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팬들도 그렇게 불러주지 않을 것"이라며 "팬들이 나를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내고, 창의적인 이름으로 불러준다는 것이 매우 기쁘다"며 드물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일류첸코는 동료 팔라시오스의 빠른 쾌유를 기다린다. 한국프로축구연맹 마지막으로, 부상으로 잠시 그라운드에 설 수 없는 '18' 동지 팔로세비치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일류첸코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씩 웃었다. "항상 내게 큰 도움이 되어주는 친구, 늘 고맙고 발목 부상에 대해 너무 크게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문을 연 일류첸코는 "최대한 빨리 돌아와서 어시스트를 많이 해주면 좋겠다. 팔로세비치의 도움을 받아 골을 많이 넣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자 "왼발잡이가 오른발 다쳤다고 엄살을 부린다. 나였으면 그런 부상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구박(?)하기도 했다. 물론 진심이 아닌, '군기반장' 일류첸코식 농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