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고척스카이돔 인터뷰실에 나타난 염경엽(52) SK 와이번스 감독 얼굴은 새까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듯, 얼굴이 반쪽이었다. 가뜩이나 마른 편인데, 살이 더 빠져 보였다. 한 마디 한 마디에 한숨이 묻어났다. 감독의 경기 전 인터뷰는 대개 10~15분 진행된다. 염 감독 인터뷰는 3분 만에 끝났다. 그 짧은 인터뷰 내내 염 감독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2013년 넥센 히어로즈에서 프로야구 감독으로 데뷔한 염 감독은 올해로 감독 6년 차다. 초보 감독 시절부터 염 감독을 봤는데, 이토록 작아진 염 감독은 처음이다. 그 정도로 2020시즌은 염 감독에게 고통스럽다.
SK의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시즌 초반 최하위로 떨어졌다가, 지난달 31일 탈꼴찌 했다. 9일에는 8위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1승9패를 하며 9위로 내려갔다. 10위 한화 이글스와 승차는 2.5경기로 좁혀졌다. 이러다가 또 최하위로 내려갈지 모를 판이다.
SK는 시즌 초부터 주전 선수 부상으로 고생했다. 특히 안방마님 이재원(32)이 지난달 7일 오른손 엄지 골절로 전력에서 이탈한 여파가 컸다. 이재원은 20일 키움 히어로즈전을 통해 복귀했고, 21일 키움전에는 주전 포수로 나왔다. 베테랑의 복귀로 반전을 꾀했지만, 선발투수로 나온 리카르도 핀토(26·베네수엘라)와 호흡이 맞지 않았다. 그 바람에 오히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 경기에서 핀토와 이재원은 키움 주자들에게 5개의 도루를 허용했다. 네 차례 도루는 실점으로 연결됐다. 성질이 불같은 핀토가 이재원을 향해 불만을 표시하는 모습이 보였다. 성적이 안 좋은데, 팀원 사이의 불화 모습까지 생생하게 중계됐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염 감독이 프로 지휘봉을 잡은 이래, 팀 성적이 이렇게 바닥을 친 건 처음이다. 그는 통산 타율 1할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 시절과는 달리, 감독으로서는 출발부터 승승장구했다. 정규 시즌마다 5할 넘은 승률을 기록했고, 지난 시즌까지 매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2013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를 맡았을 때만 해도 여기저기서 “염경엽이 누구지”라며 낯설어하는 팬이 많았다.
초보 감독답지 않은 세심한 관리와 치밀한 작전으로 염 감독은 그해 넥센을 4위에 올려놓았고, 구단 창단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이듬해에는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해 준우승했다. 히어로즈 구단 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팬들은 그를 제갈량처럼 빼어난 지략가라며 ‘염갈량(염경엽+제갈량)’으로 불렀다. 선수 때 받지 못한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았다.
2017년 SK로 자리를 옮겨 단장을 맡았고, 지난해 SK 감독이 됐다. 연봉은 7억원으로, KBO리그 10개 팀 감독 중 최고 수준이다. 구단은 염 감독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염 감독은 지난 시즌 내내 1위로 기대에 부응했다. 하지만 정규시즌 막판, 상대 전적에서 밀려 두산 베어스에 1위 자리를 내줬다. 88승을 거두고도 정규 시즌을 놓쳤다. 이어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포스트시즌을 마쳤다. 그 여파가 올 시즌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평소 감정을 잘 관리하는 염 감독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19일 키움전 9회 말, 1사 주자 1, 2루에서 SK 마무리 투수 하재훈이 상대 타자 박동원에게 연속으로 볼 3개를 던지며 흔들렸다. 당시 중계 카메라가 더그아웃의 염 감독을 비췄는데,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손을 떠는 모습이 잡혔다. 결국 하재훈은 주효상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고, SK는 1-2로 졌다. SK 팬들은 ‘화가 나는데, 감독님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염 감독은 별별 방법을 다 쓰고 있다. 21일 키움전을 앞두고는 선수단에 휴식을 줬다. SK 선수들은 오후 4시쯤 고척돔에 도착해 각자 20여분간 자율 훈련을 하고 경기에 들어갔다. 스트레스받는 선수들을 위한 처방이었다. 그런데도 2-7로 졌다.
1선발로 데려온 외국인 투수 닉 킹엄(29·미국)을 대체할 선수도 찾고 있다. 킹엄은 팔꿈치 통증으로 2경기만 뛰고 개점휴업 상태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해외에서 좋은 투수를 찾는 게 마음만큼 쉽지 않다.
천하의 염갈량이라도 묘수가 없어 보인다. 오죽하면 염 감독이 “모든 얘기가 핑계로 들릴 거 같아서 할 말이 없다”고 했을까. 시련의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