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19일 KBO 리그가 들썩였다. SK가 새 외국인 타자로 루크 스캇 영입을 발표한 직후였다.
'역대급 타자'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이 무려 135개였다. 서른여섯의 나이로 전성기를 지났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커리어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다. KBO 리그 무대를 밟은 외인 타자 중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121홈런)에서 모두 100홈런 이상을 기록한 건 스캇이 처음이었다.
계약 총액은 '관례'에 따라 30만 달러(3억6000만원)였다. 그러나 구단 발표를 믿는 야구인은 거의 없었다. 당시엔 규정에 따라 외국인 선수 몸값이 총액 30만 달러를 넘을 수 없었다. 배리 본즈를 영입해도 발표 금액이 30만 달러로 통일되던 시기였다. SK와 계약 직전 해인 2013년 스캇의 연봉은 275만 달러(33억원)였다.
결말은 최악이었다. 스캇은 7월 15일 인천 한화전을 앞두고 촌극을 일으켰다. 취재진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만수 감독에게 "거짓말쟁이(liar)" "겁쟁이(coward)"라고 말하면서 항명했다. 감독의 선수기용 방법과 2군행 통보 등에 불만을 품고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튿날 곧바로 퇴출당했다. 성적(타율 0.267)도 부진했고 팀을 떠난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2017년 7월 대체 외인으로 LG와 계약한 제임스 로니도 비슷하다. 로니는 영입 당시 스캇과 비슷하게 '역대급 타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9순위에 지명된 초특급 유망주 출신. 2008년부터 4년 연속 LA 다저스 주전 1루수로 뛰었다. 스캇(889경기)보다 더 많은 빅리그 1443경기에 출전해 통산(11년) 타율 0.284, 108홈런, 669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LG와의 인연은 40일, 23경기 만에 끝났다. 2군행을 통보한 구단 방침에 반기를 들고 팀을 무단이탈해 미국으로 돌아가는 '막장' 상황을 연출했다.
미국에서의 이력이 KBO 리그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에디 버틀러는 한때 콜로라도가 공을 들인 투수 유망주다. 지난해 NC와 계약할 때만 하더라도 기대가 컸다. 하지만 경기 중 투구 후 글러브를 집어 던지고 발로 차는 추태를 벌였다. 성적 부진에 잔부상까지 겹쳐 7월 팀을 떠났다.
2018년 6월 대체 외인으로 영입된 스캇 반슬라이크도 인지도에선 뒤지지 않았다. 류현진의 다저스 팀 동료였다. 오른손 대타 자원으로 입지도 꽤 굵었다. 두산 유니폼을 입고 12경기에서 남긴 성적은 타율 0.128(39타수 5안타)로 초라했다.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인 타자로 평가받는 에릭 테임즈는 2013년 12월 NC와 계약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계약 직전 시즌 마이너리그 트리플A 성적이 타율 0.283, 10홈런, 49타점이었다. 신인 드래프트 최상위 지명을 받은 것도 빅리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NC 유니폼을 입은 3년 동안 타율 0.349, 124홈런, 382타점으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KBO 리그 역대 외인 다승 4위(73승) 앤디 밴헤켄은 2011년 12월 넥센(현 키움)과 계약 당시 메이저리그 통산 승리가 단 1승에 불과했다.
지난 20일 키움이 대체 외국인 타자로 영입을 발표한 에디슨 러셀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출신에 빅리그 2년 차이던 2016년 올스타에 뽑힌 내야수다. '역대급 타자'라는 수식어가 모처럼 붙었다. 키움은 규정상 러셀에게 줄 수 있는 최대 금액(53만 달러·6억4000만원)을 모두 안겼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그러나 변수도 많다. 2018년 10월 가정폭력 혐의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4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받아 2019시즌 82경기(타율 0.237) 출전에 그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여파로 올 시즌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 경기 감각이 어느 정도일지 예상하기 어렵다. 내년 시즌 빅리그 리턴이 유력한 만큼 얼마나 구단에 녹아들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한다.
2013년 12월 이만수 전 SK 감독이 원한 외국인 타자는 스캇이 아닌 브렛 필이었다. 필은 당시 메이저리그 경력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대신 마이너리그에서 탄탄한 경력을 쌓고 있었다. 필은 SK와 계약이 불발된 뒤 KIA와 계약해 3년을 뛰었다. 이 기간 연평균 20홈런을 때려내며 '효자 용병' 소리를 들었다. '이름값'으로 야구하던 시절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