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건 주인공 네오가 슬로우 모션으로 총알을 피하는 장면이다. 이는 상상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흔히 말하는 '야구공이 볼링공처럼 보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인간은 늘 불가능에 도전했다. 스포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각 훈련 관련 연구는 1950년대부터 진행됐다. 눈은 인체 중 가장 정밀한 움직임과 조절이 가능한 부위다. 총 6개의 작은 안구 근육들이 기능적으로 시력조절을 담당한다. 이 중 동체시력(Dynamic visual acuity·DVA)은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안구의 움직임으로 추적하고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시속 150㎞의 공을 상대해야 하는 타자들에겐 동체시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야구선수의 동체시력은 일반인보다 우수하다. 타율과 동체시력의 상관성이 있다는 보고도 발표된 바 있다. 하지만 인간의 안구운동 각속도 한계는 120㎞/h 정도다. 시속 150㎞ 이상의 빠른 공은 인간의 생리학적 한계를 초과하는 움직임으로 분류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능숙하고 우수한 타자라고 해도 빠른 공을 100%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걸 가능하게 하려면 생리학적 한계보다 훨씬 빠르게 눈을 움직여야 한다.
우수한 타자들은 적절한 도약안구운동(Saccadic movement)으로 공을 추적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도약안구운동은 마치 눈을 빠르게 깜빡거릴 때 보이는 모든 장면이 연속적이지 않고 끊어진 동작으로 인식되는 방식과 유사하다. 타자는 투수의 빠른 공을 연속사진과 같은 장면으로 추적해 100% 완전하지 않은 공의 궤적 정보를 바탕으로 타격하게 된다. 동체시력이 우수한 선수는 그렇지 않은 선수에 비해 받아들이는 연속사진(시각적 정보)의 양이 많고 명확하다. 그로 인해 보다 많은 공의 궤적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타구가 가능할 수 있다.
동체시력이 우수하다는 건 그만큼 빠른 공을 잘 추적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추신수(텍사스) 조이 보토(신시내티) 이승엽(은퇴)을 비롯한 국내외 타율이 뛰어난 대부분의 타자는 동체시력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즈키 이치로는 현역 시절 동체시력 향상을 위해 날아오는 테니스공에 번호를 적고 그걸 읽는 훈련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동체시력은 훈련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안구의 움직임이 느리면 획득할 수 있는 장면 또한 적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빠른 안구 움직임이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의 근육은 용불용설(用不用說)에 충실해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나 글씨를 식별하는 방법 등으로 향상될 수 있다.
둘째, 비연속적인 빠른 장면에 대한 예측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다. 쉬운 예로 눈을 빠르게 깜빡거리는 환경에서 물체의 움직임 정보를 습득하고 반응토록 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런 상황은 장비나 도구의 도움 없이는 다소 힘들 수 있다.
셋째, 시야(각)를 넓게 유지한다. 인체는 시각적인 정보에 의해 주로 반응한다. 시야(각)가 넓으면 대뇌로 입력되는 정보가 많아지므로 뇌는 심리적, 육체적 긴장감을 감소시킨다. 하지만 시야가 좁아질 경우 대뇌로 받아들여지는 정보가 부족해지고 그로 인해 우리의 몸은 불안 심리가 증가해 신체의 긴장성을 상승시키기도 한다.
야구선수에게 동체시력은 훈련의 성과를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자 재능이다. 다행히 이러한 재능은 후천적으로 훈련으로 충분히 향상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