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 경기가 열린 27일, 축구계 지인이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유상철(49) 전 인천 감독과 마주쳤는데, 안색이 좋아졌다는 거다. 유 감독은 지난해 말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올 초 감독에서 물러나 항암 치료에 전념했다. 지인이 보여준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밝고 편안해 보였다. 혈색이 돌아와 발그레했다. 황달 증세로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지난해와 딴판이었다.
불과 하루 뒤 이번에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왔다. 7연패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한 임완섭(49) 인천 감독 후임으로 유 전 감독이 거론된다는 얘기였다. ‘설마’ 했는데,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급기야 29일 “유 전 감독이 인천 사령탑에 복귀해 다음 달 4일부터 지휘봉을 잡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팬들의 부정적 반응에 놀란 구단이 “유상철 전 감독의 건강이 우선”이라며 선임 의사를 백지화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기전까지 논란이 이어졌다.
유 전 감독 건강이 호전된 건 기쁘고 반가운 일이다. 그는 힘겨운 항암 치료를 꿋꿋이 버텨냈다. 지난 주말 13차 치료를 끝으로 반 년간의 의학적 처치는 모두 마무리했다고 한다. 치료 초기에는 ‘어지럼증을 느껴 급히 병원을 찾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잠잠해졌다.
기대 이상 빠른 회복세를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팬과의 약속일 것이다. 유 전 감독은 인천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건강을 회복해 반드시 K리그 현장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동료였던 홍명보(51)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유)상철이는 힘든 항암 치료 과정에서도 늘 긍정적이었다. ‘건강해진 몸으로 팬 앞에 다시 선다’는 일념으로 견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없던 일이 됐지만, 아직 몸을 추스르기에도 힘겨운 그에게 지휘봉을 쥐게 하려 한 인천 구단은 비판받아야 한다. 전보다 호전됐다해도 아직 치료가 끝났다고 말할 단계가 아니다. 항암 치료 이후에도 힘든 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 갈 길이 멀다.
인천 입장에서 ‘유상철 카드’는 연패로 바닥에 떨어진 팀 분위기를 단번에 끌어올릴 자극제다. 인천은 지난해에도 “죽더라도 그라운드에서 죽겠다”는 유 전 감독의 집념으로 기적처럼 강등을 면했다. 말기 암을 이겨내고 그라운드에 컴백한 사령탑의 성공담은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될 것이다.
인천이 유 전 감독 선임 여부를 저울질하는 과정에서 그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팀 성적이 계속 부진해서 감독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래서 혹시 건강을 다시 해치는 상황이 온다면. 그렇지 않을 거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나.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프로스포츠에서 감독은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 멀쩡하던 지도자가 건강을 잃는 경우가 자주 있다. 최근 같은 인천 연고인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염경엽(52) 감독이 경기 도중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 굳이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유 전 감독 또한 성적 부담감이 건강을 해친 요인 중 하나다.
그라운드에 선 유 전 감독을 다시 보고 싶은 건 모두 한마음이다. 다만 ‘완치’라는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인천은 당면한 성적 부진 때문에, 감동 스토리 욕심 때문에, 한국 축구 ‘레전드’를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부디 유 전 감독이 완쾌하거든, 그때는 꼭 그에게 지휘봉을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