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말은 체육계에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 앞에서 공허한 울림을 남긴다. 그동안 끊임 없이 폭력과 폭행 논란에 시달려 온 체육계가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낳고 말았다. 어떻게 해도 23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등진 고(故) 최숙현 선수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가 남긴 마지막 한 마디 소망은 이뤄져야 한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달라'는 유언 말이다.
대한철인3종협회는 6일 오후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어 고 최숙현 선수의 문제를 다룬다. 고인은 소속팀인 경주시청 감독과 팀닥터, 선배 2명을 가혹 행위를 당했다며 올해 2월 법적 절차를 밟고, 4월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철인3종협회에 진정서와 징계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일처리는 더뎠고 결국 고인은 지난달 26일 오전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메시지를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발인이 엄수된 뒤 고인의 사연이 보도되고, 1일 이용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통해 철저한 수사와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면서 언론을 통해 폭행 당시 상황을 담은 녹취록 등이 연달아 공개됐다. 복숭아 한 개를 먹고 감독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하고, 슬리퍼로 뺨을 맞는 등 한 명의 선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가혹 행위 정황이 알려지자 대중은 크게 분노했다.
체육계에서 가혹 행위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당장 쇼트트랙 간판 스타인 심석희(서울시청)가 조재범 코치에게 지속적인 폭행과 추행을 당해온 사실이 알려진 게 지난해 1월이다. 그 이전에도 엄격한 체육계의 서열 문화를 앞세운 가혹 행위 문제는 계속 제기되어 왔다. 후배 폭행으로 사실상 역도계에서 퇴출당한 사재혁은 물론 쇼트트랙 신다운,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등도 후배에게 가혹 행위를 해 징계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여전히 체육계에선 선배나 지도자 등의 구타와 폭행, 가혹 행위가 사라지지 않았고 끝내 한 어린 선수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비극적인 일로 이어졌다.
체육계 관계자들은 "단기간에 성적을 내야 선수의 진학, 취업, 그리고 지도자의 성과 등이 보장되는 상황에서 성적 지상주의를 앞세운 체벌이나 가혹 행위가 만연한 분위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경기력 향상 수단으로 체벌을 용인하는 분위기 자체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제도적인 변화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이지열 철인3종 유소년 대표팀 전 감독은 "지금도 가혹 행위로 고통받는 선수들이 있다. 선수들이 빠르게 신고할 수 있게 시스템을 만들고, 선수들은 가혹 행위를 당하면 꼭 신고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도 '맞으면 신고한다'는 생각이 정착해야,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가혹 행위가 줄어들 수 있다"며 체육계의 시스템과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선 중요한 건 6일 열리는 스포츠공정위다. 스포츠공정위 규정 제24조 우선 징계처분에는 '징계 혐의자의 징계사유가 인정되면 관계된 형사사건이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거나, 수사기관이 이를 수사 중이라고 해도 징계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현재 고 최숙현 선수 관련 사건은 대구지검에서 조사 중이지만, 녹취록과 주변인들의 증언 등 상당수의 증거가 확보된 상황이라, 법적 절차와 별개로 협회 차원에서 가해자들에게 우선적인 징계를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공정위는 '위반행위별 징계기준'에서 폭력을 행사한 지도자, 선수, 심판, 임원은 그 수위가 중대하다고 판단하면 '3년 이상의 출전정지, 3년 이상의 자격정지 또는 영구제명'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한 바 있다. 협회가 가해자들의 폭행 수위를 어느 정도로 판단하느냐에 따라 징계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공개된 내용 만으로도 영구제명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혹 행위 근절을 위해 체육계가 바뀌어야 하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선 눈앞의 일부터 올바르게 해결해야 한다. 하루 아침에 시스템을 뜯어 고치고 분위기를 바꾸긴 어렵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기준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혹 행위를 통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에게, 협회가 어떤 징계를 내릴 것인지 지켜보는 시선이 엄중한 것 역시 이 때문이다. 6일 열리는 협회의 스포츠공정위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잘못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면, 협회가 말하는 "재발 방지를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 이런 일이 우리 종목에 다시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말은 또 한 번의 공허한 울림에 그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