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펠릭스 호세와 카림 가르시아 등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외국인 타자를 잘 뽑았다. 반면 외국인 투수 스카우트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다. 조쉬 린드블럼, 브룩스 레일리, 라이언 사도스키 등이 롯데에서 세 시즌 이상 뛰었지만, 타자들만큼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했다.
외국인 투수의 활약이 뜸했던 롯데 마운드에 새로운 '스타'가 떴다. 공도 잘 던지고, 커피도 사고, 티셔츠 선물도 하는 댄 스트레일리(32)다.
롯데는 지난겨울 외국인 선수 3명을 전원 교체하면서 스트레일리를 아드리안 샘슨(29)의 뒤를 잇는 2선발로 분류했다. 몸값도 스트레일리(80만 달러)보다 샘슨(83만 9700달러)이 더 높았고, 계약 발표도 샘슨이 우선이었다. 스트레일리는 지난해 메이저리그(MLB)에서 2승 4패 평균자책점 9.82에 그쳤다. 반면 샘슨은 계약 직전까지 텍사스에서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활약하며 6승 8패 평균자책점 5.89를 기록했다.
MLB 통산 경력은 스트레일리가 더 화려하다. 2013년 27경기에서 152⅓이닝을 던져 10승(8패)을 거둔 스트레일리는 아메리칸리그 신인상 투표 4위에 올랐다. 2016년에는 14승을 거두기도 했다. MLB 통산 성적은 44승 40패, 평균자책점 4.56이다.
샘슨이 부친의 병환으로 미국에 다녀온 뒤 자가 격리를 거치는 동안 스트레일리는 롯데의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14일까지 3승(2패)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투구 내용은 최상급이다. 평균자책점 3위(2.07), 탈삼진 1위(83개)에 올라있다. 82⅔이닝을 던져 최다 이닝에서도 2위를 기록 중이다. 이닝당 출루허용률은 0.97(3위)로 전체 3위다. 이른 감은 있지만, 롯데 역대 외국인 투수 중 최고가 될 수 있는 페이스다.
실력에 비해 운은 따르지 않고 있다. 타선과 수비, 불펜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다승 부문에서는 공동 34위에 그치고 있다. 그가 거둔 세 번의 승리는 모두 무실점했을 때 달성했다.
팬들은 '(브룩스) 레일리'가 가고, 더 불운한 (댄) 스트레일리'가 왔다고 안타까워한다. 롯데 최장수 외국인 선수인 레일리는 지난해 19번의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와 3.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저조한 득점 지원과 수비 실책 탓에 5승에 그쳤다. 레일리는 시즌 최다패(14패) 기록을 남기고 롯데를 떠났다.
스트레일리는 긍정적인 자세로 불운과 맞서고 있다. 지난 8일 한화전 등판에 앞서 그는 동료들에게 커피 50잔을 돌렸다. 당시 스트레일리는 5월 10일 SK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KBO리그 데뷔 첫 승을 올린 뒤 두 달 가까이 2승 달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선물한 커피는 훌륭한 각성제였다. 스트레일리는 8일 한화전에서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2승을 달성했다. 이어 14일 LG전을 앞두고 그는 또 커피를 돌렸다. 이날 8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스트레일리는 3승(롯데 5-0 승리)에 성공했다. 스트레일리는 "동료들에게 커피를 사는 건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팀이 이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 것"이라고 웃었다.
스트레일리는 얼굴을 뒤덮는 덥수룩한 턱수염을 가지고 있다. 무표정일 때는 다소 무서운 인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따뜻하고, 재치가 있는 선수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스트레일리가 일명 '분하다 준태티'를 만들어 롯데 포수 김준태에게 선물한 사건은 꽤 유명하다. TV 중계 화면에서 김준태의 모습을 캡처해 제작한 것이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롯데 구단은 팬들의 요청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 승리의 토템'이라며 공식 스토어에서 판매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마케팅 방안에 골머리를 앓던 구단에 스트레일리가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이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분하다 준태티'의 인기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주문이 쇄도해 2500장을 완판했다"고 귀띔했다.
스트레일리는 "김준태가 무표정한 편이다. 그를 웃게 해주고 팀 분위기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티셔츠를 제작했다"며 "구단 스토어에서 공식 판매를 해서 나도 신기했다. 준태가 더 행복했으면 한다"고 웃었다. 스트레일리와 배터리를 이루는 단짝 포수는 김준태가 아닌 정보근이다. 스트레일리는 한 번도 호흡을 맞춘 적이 없는 김준태를 응원한 것이다. 스트레일리는 "'준태티'에 이어 다음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아마도 정보근이나 통역원(배우현 씨)이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롯데 마운드의 스타인 그는 가족에게도 '효자'다. 그는 최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오늘 내 아버지가 한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다. 아버지는 혹시 모를 폐렴 검진을 위해 입원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아버지와 구조된 아이가 건강하길 바란다'고 효심을 드러냈다. 스트레일리는 시즌 3승에 성공한 뒤 "아버지와 관련된 소식을 팬들에게 상세히 전하겠다"고 전했다.
30대 초반의 스트레일리는 KBO 리그에서 성공하길 꿈꾼다. 그는 "내 승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 성적을 신경 쓰기보다 팀이 승리할 기회를 만드는 것이 내 임무다. 내가 야구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라며 "그래도 평균자책점 1위는 달성하고 싶다. KBO 무대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