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SC프라이부르크 미드필더 권창훈(26)은 21일 인터뷰 장소를 경기도 고양시로 하자고 요청했다. 원래 집이 수원인 권창훈은 “임시로 일산에 한 달짜리 거처를 구했다. 파주까지 2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축 멤버인 권창훈(A매치 23경기 5골)은 대한축구협회 배려로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서 개인 훈련 중이다. 소속팀에서 제공한 훈련 프로그램을 따른다.
2019~20시즌 일정을 마친 권창훈은 지난달 29일 귀국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2주간 자가격리했는데, 숙소 앞 작은 마당에서 꾸준히 운동했다. 5주 간의 꿀맛 같은 휴식기도 권창훈의 훈련 열정은 식지 않았다.
권창훈은 지난해 6월 디종(프랑스)을 떠나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했다. 두 달 뒤 파더보른을 상대로 분데스리가 데뷔골, 1월 마인츠전에서 2호 골을 터트렸다. 올 시즌 34경기 중 23경기에 출전했지만, 선발 출전은 6경기에 그쳤다.
부상이 아쉬웠다. 권창훈은 디종에서 치른 2018~19시즌 프랑스 리그 최종전에서 점프 뒤 위험하게 떨어져 목뼈를 다쳤다. 프라이부르크 팀닥터 조언에 따라 시즌 초반 조심하면서 차분히 페이스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공교롭게도 프라이부르크가 시즌 초반 3위로 고공행진하면서 기회의 문이 더욱 좁아졌다. 감독이 기존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권창훈은 주로 후반에 교체 투입돼 활기를 불어 넣는 역할을 맡았다. 불리한 상황에서도 독일 무대 데뷔 시즌에 20경기 이상 출전한 건 소득이다.
권창훈은 “프랑스 리그가 개인기를 중시한다면, 독일은 조직력 위주다. 바이에른 뮌헨 같은 강팀을 상대하며 많이 배웠다. 지방을 빼고 근육량을 늘렸다. 수비수와 부딪히기 전에 한발 빨리 움직이려했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프랑스에서처럼 독일 동료들은 그를 ‘창’이라 부른다.
권창훈은 올여름 중동팀에서 거액의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2017년 수원 삼성에서 유럽으로 떠날 때도 그랬다. 권창훈은 “유럽에서 최대한 오래 뛰고 싶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경험하고 배우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권창훈은 2018년 5월 아킬레스건을 다쳤다. 프랑스 리그에서 11골을 넣으며, 러시아월드컵 출전을 한달 앞둔 때였다. 부상으로 월드컵은 물론, 그해 열린 아시안게임과 이듬해 초 아시안컵까지 세 번의 메이저급 대회에 불참했다. 시련과 좌절의 시기였지만, 권창훈은 묵묵히 재활에 몰두했다. 7개월(214일) 만에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권창훈은 “누구를 원망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아무는 것 같다. 그저 ‘세상에 결과로 보여주자’는 생각 하나로 버텼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에이전트인 류택형 월스포츠 상무는 “득도한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든 최선을 다해 최고의 축구를 지향한다’는 심플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어쩌면 오직 축구만 바라보는 마지막 사커키드일지 모른다”고 했다. 아버지가 빵집을 운영하던 시절, 권창훈의 별명은 ‘빵훈이’였다. 이젠 ‘축구 도인’에 가깝다.
권창훈은 “다치고 얼마 안돼 (이)청용이 형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 마음 잘 안다’며 격려해줘 힘이 됐다”고 했다. 이청용(울산)도 2011년 오른쪽 정강이뼈가 이중골절되는 큰 부상을 겪었다.
김학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1순위로 권창훈을 꼽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올림픽은 내년으로 연기된 상황. 권창훈은 “저보다는 해당 연령대 선수들이 더 아쉬웠을거 같다. 지난 1월 올림픽 최종예선을 봤는데, 감독님이 엔트리에 오른 선수를 고루 기용했다. 선수 구성에 맞춰 전술을 바꾼 장면이 놀라웠다. 난 올림픽행이 보장된 게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몸을 만들 뿐”이라고 했다.
1994년생 권창훈은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 획득하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상무에 입단하려면 내년 여름에 K리그로 돌아와야한다. 프라이부르크와 계약 기간은 다음 시즌까지고, 1년 연장 옵션이 있다. 권창훈은 “(고민이 많지만) 일단 한 시즌을 잘 치르자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