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시즌을 앞둔 미국 애리조나 투산에서 열린 KT의 스프링캠프. KBO 리그 세 번째 시즌을 앞둔 멜 로하스 주니어(30·KT)의 시즌 목표는 명확했다. 메이저리그(MLB) 재도전.
로하스는 2018년 겨울부터 미국 무대 진출을 시도했다. 실제로 계약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40인 로스터 진입이 보장되지 않은 '스플릿 계약'이었다. MLB 계약과 마이너리그 계약을 분리하자는 내용이었다. 선수에게 불리한 조건을 거부하고 로하스는 KT와 재계약했다. 당시 그는 "2019시즌도 43홈런을 기록한 2018시즌만큼 좋은 성적을 낸다면 MLB에서 더 좋은 오퍼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2019시즌 로하스는 타율 0.322·24홈런을 기록하며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 기록을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는 지난겨울에도 MLB 구단과 계약하지 못했다.
2020년 로하스는 달라졌다. 전보다 팀 배팅에 집중하고 있다. 이강철 KT 감독은 "2스트라이크 이후 로하스의 타격을 보면 그걸 알 수 있다"고 귀띔했다.
이강철 감독은 지난 25일 수원 NC전을 6회말 상황을 복기했다. 1-1 동점 상황에서 황재균이 2루타를 치며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후속 타자 로하스는 볼카운트 1볼-0스트라이크에서 들어온 NC 선발투수 마이크 라이트의 몸쪽 컷 패스트볼을 공략했지만 파울에 그쳤다. 이어진 3구째 커터에도 배트를 헛돌렸다.
로하스는 이후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 3개를 모두 골라냈다. 컷 패스트볼, 커브, 포심 패스트볼 조합이었다. 아래로 떨어지는 공 다음에 몸쪽으로 빠른 공이 들어왔다. 배트가 쉽게 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강철 감독은 "이 승부를 보면서 로하스가 달라졌다고 느꼈다. 지난해까지는 1사 3루에서도 (팀 배팅이 아닌) 자기 스윙을 하던 선수다. 그러나 올 시즌은 상황에 맞는 타격을 한다.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로하스의 공격성이 줄어든 건 아니다. 이강철 감독은 "주자가 없거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는 원 바운드 투구에도 스윙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자가 있을 때, 상대 투수가 유인구나 변화구로 덤빌 때는 신중하게 바뀐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도 볼넷을 골라내고 있다. 이 감독은 "예전 같으면 스윙해야 할 공을 로하스가 참아내고 있다. 투수 입장에서는 상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로하스가 달라진 점은 기록도 뒷받침한다. 로하스는 28일 기준으로 풀카운트 승부를 42번 기록했다. 규정 타석을 채운 KT 타자 가운데 세 번째로 많다. KBO리그 볼넷 1위 김재환(두산)도 풀카운트 승부는 49번이다. 로하스가 타석당 끌어낸 투구 수는 4.00개. 지난해(3.77개)보다 더 신중한 타격을 하는 것이다.
이강철 감독은 "나도 로하스에게 이런 변화의 이유를 물어보고 싶다"며 웃었다. 로하스는 이미 답했는지도 모른다. 올 시즌 그는 "KT에서 오래 뛰고 싶다"고 말했다. 개인 기록보다 팀 공헌도로 평가받겠다는 뜻이다. MLB가 아닌 KT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