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지침을 발표한 가운데, KBO리그 선수들은 자체적으로 더 강력한 방역을 하고 있다. 리그가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노력이다.
25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는 눈에 띄는 장면들이 많이 보였다. 삼성의 새 외국인 타자 다니엘 팔카가 3-3이던 6회 말 솔로포를 때린 후에도 더그아웃이 아주 조용했다. 삼성의 3연패를 끊어낼 수 있는 홈런을 친 뒤에도 팔카는 더그아웃 벤치로 뚜벅뚜벅 걸어가 혼자 앉았다. 데뷔 첫 홈런을 치면 동료들이 모른 척 하는 '침묵 세리머니'로 보였다.
뜻깊은 홈런을 일부러 축하하지 않다가, 홈런을 친 선수가 실망할 때 갑자기 몰려들어 세리머니를 하는 게 메이저리그(MLB) 관례 중 하나다. 최근 KBO리그에서도 유행처럼 번졌다. 그러나 팔카에게는 시간이 꽤 지난 뒤에도 축하하러 달려드는 선수가 없었다. 마치 '왕따 세리머니' 같았다. 6회 말 공수교대 때 팔카가 더그아웃 앞으로 나가자 삼성 선수들이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그런데도 신체 접촉은 하지 않았다. 2회 삼성 강민호, 4회 LG 김현수가 4회 홈런을 때렸을 때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혼자 손을 올려서 '허공 하이파이브'를 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 박해민과 김상수는 마스크를 쓴 채 타석에 들어섰다. 박해민은 3타수 2안타, 김상수는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무섭게 퍼지기 시작한 지난 3월 일부 선수들은 로 마스크를 쓴 채 자체 평가전을 치렀다. 당시만 해도 실전에서 마스크를 쓸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해지자 선수들이 알아서 경기 중에 마스크를 쓴 것이다. 그리고 안타도 때려냈다.
KBO는 25일 코로나 대응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어 코로나19 예방수칙을 강화하고, 미준수 시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일부 지자체에서 실내 및 실외 공간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함에 따라, KBO리그 선수들도 그라운드를 제외한 더그아웃 등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것이다.
훈련 때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권고했지만, 강제하지는 않았다. 다만 선수 간 1m 이상 거리두기를 주문했다. 예방수칙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경고→벌금 20만원→벌금 100만원을 차례로 부과하기로 했다. 또한 유흥주점·단란주점·PC방 등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되면 벌금 100만원을 부과하고, 2차 위반 시에는 상벌위원회에서 제재를 심의하기로 했다.
선수들은 KBO의 방역 지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훈련 때와 경기 중에도 마스크를 쓰는 선수들이 있을 만큼 자체적으로 방역을 강화했다.
KBO는 5월 정규시즌 개막에 앞서 맨손 하이파이브와 침뱉기, 물뿌리기 등의 행위를 금지했다. 그러나 선수들이 차츰 느슨해져 어느새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개막 후 3개월 동안 무관중 경기를 치른 KBO리그는 이달 초 경기장 수용인원의 10% 수준부터 관중을 받았다.
이달 중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한 지 이틀 만에 방역당국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25일 나왔다. 10명 이상의 실내 모임이 금지되는 고강도 조치가 실시되면 KBO리그 등 프로스포츠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 시즌 중단은 야구단의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때문에 선수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어느 때보다 크다. 대구뿐 아니라 잠실(두산-KIA전), 수원(KT-키움), 부산(롯데-SK), 창원(NC-한화) 경기도 비슷했다. 선수들은 세리머니를 자제했고, 더그아웃에 마스크를 쓰고 앉았다. 낯설지만, 야구가 멈추는 걸 막기 위한 선수들의 합심이 만든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