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열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준비를 마쳤다. 더욱 진화한 두뇌 싸움 '테넷'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할리우드 텐트폴 영화들이 개봉을 미루거나 포기한 상황에서 '테넷'만이 당당히 도전장을 냈다. 개봉을 망설이던 북미 대형 스튜디오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자신감이 담겼다. 지난 22일과 23일 일부 국내 극장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진행했는데, 개봉 전 시사에서만 8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 극장가가 '테넷'이 몰고온 폭풍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가고 있다.
대중이 기대하는 할리우드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 약 2억 달러(한화 2379억 원)의 제작비를 아낌 없이 쏟아부어 해외 로케이션 사상 역대 최다인 전 세계 7개국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남들이 블루 스크린 앞에서 CG로 구현할 때 진짜 보잉 747 비행기를 구입해 폭발시켰다. 무려 20년간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6년간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모든 것은 할리우드의 천재로 불리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에서 이뤄졌다. 놀란 감독은 "기존에 없던 시간의 개념에 SF와 첩보영화의 요소를 섞은 작품"이라며 '테넷'을 자신의 영화 가운데 최고의 야심작이라고 소개했다.
출연: 존 데이비드 워싱턴·로버트 패틴슨·엘리자베스 데비키·케네스 브래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장르: 액션·SF
줄거리: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50분
한줄평: 매 매 매운 맛 너무해 놀란
별점: ●●●●○
신의 한 수: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두시간 반. 양자역학·엔트로피 등의 개념이 줄줄이 등장하고, 약 한시간 정도가 지나고 나면 뇌에 과부하가 와 버린다. 그래서 크리스토퍼 놀란은 등장 인물의 입을 빌려 조언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요. 직감"이라고. 복잡하고 다단한 이 영화는 직감으로 느끼고 즐길 때 가장 흥미롭다. 사실 놀란의 전작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인셉션'의 주연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그러나 '인셉션'과 '인터스텔라'는 뜨겁게 흥행하며 사랑받았다. '테넷' 또한 마찬가지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데 신나고 재미있는, 놀란 매직이다. 영화적 쾌감에 집중하다보면 150분이 15분처럼 느껴진다. 학창시절 물리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고 졸기 십상이었던 관객도 '테넷' 시간엔 졸지 않을 수 있다. 놀란 감독이 잠시라도 관객이 한 눈 팔지 못하게 만든 덕분이다. 빠른 호흡으로 편집해 쉴 새 없이 사건을 터뜨리고, 대형 보잉 747 비행기를 실제로 가져다 터뜨려버린다. 과거와 현재가 뒤엉키며 생겨나는 흥미진진한 복선도 여러 가지 심어놓았다. 평소 액션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놀란이지만, 이번에는 액션도 일품이다. 특히 시간을 순행하는 이와 역행하는 이, 양측이 뒤엉켜 싸워야하는 독특한 액션은 놀란이기에 가능했다. 마지막 대규모 전쟁신도 박진감 넘친다. 할리우드 상업 영화이지만,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진한 여운을 남긴다. 워낙 여러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기 때문. 여주인공의 이름 캣(엘리자베스 데비키)과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연관성이라든지, 닐(로버트 패틴슨)의 정체에 관한 여러 가설이라든지,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생각으로 가득차게 된다. 누군가는 열심히 양자역학에 관해 관해 공부하기도 할 터다. 러닝타임은 150분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과 관객의 두뇌 싸움은 극장 밖에서도 펼쳐진다.
신의 악수: 영화적 쾌감이 대단하다지만, 일단 영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양자역학에 관해 익힐 필요가 있다. 엔트로피를 반전시켜서 시간을 거스를 수 있는 미래 기술, 인버전을 이해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어렵다고 정평이 난 크리스토퍼 놀란의 전작들과 비교해도 가장 난해하다. 난이도로 비유하자면, '인셉션'이 집합과 함수, '인터스텔라'가 미적분, '테넷'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상대성 이론을 담은 '인터스텔라'보다도 몇배는 어렵다. 과거와 현재가 섞인 '메멘토'가 순한 맛이라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킨 '테넷'은 핵 매운 맛이다. 게다가 크리스토퍼 놀란도 관객에게 최소한의 설명만 제공한다. 그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불친절하다. 인버전 개념이 처음 등장한 후 나오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요. 직감"이라는 대사가 마치 "어차피 이해 못할 걸?"이라는 말처럼 들릴 정도다. 또한, 한국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배우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국내 흥행에 사소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주인공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덴젤 워싱턴의 아들로, 국내에서 아직 그렇다할 흥행작을 갖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