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 통산 363승을 기록한 투수 워렌 스판의 명언이다. 363승은 MLB 역대 다승 6위이자 라이브볼 시대인 1920년 이후 1위에 해당한다. 마흔네 살까지 MLB에서 뛴 스판은 선수 생활 막판 구속이 큰 폭으로 줄었지만, 투구 로케이션과 구속을 달리해 버텼다. 스크루볼에 이어 슬라이더까지 장착해 수 싸움을 복잡하게 가져갔다. 특유의 하이키킹 투구 동작을 더해 타자가 원하는 타격 타이밍을 주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두뇌 피칭'의 일인자였다.
지난달 28일 사직 롯데전 때 손혁 감독은 '타이밍'을 떠올렸다. 당시 키움은 어깨 부상 중인 최원태를 대신해 임시 선발 윤정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출발은 불안했다. 1회 피안타 2개 1실점, 2회에도 홈런 포함 피안타 3개로 1실점 했다. 손 감독은 1일 고척 NC전에 앞서 "시원시원하게 던지는데 맞을 때 계속 맞더라"며 "투구할 때마다 '초'가 같았다. 3초면 3초대로 계속 (일정하게) 던지니까 타자들이 자신만의 루틴대로 다 할 수 있었다"고 롯데전을 복기했다. 투구 템포가 일정하니 타자가 느끼는 까다로움이 덜 했다는 의미다.
지난해 KBO리그에 데뷔한 윤정현은 롯데전이 첫 1군 '선발' 등판이었다. 아무래도 마운드 위에서 여유가 부족했다. 공 던지는 데 급급했다. 주 무기인 투심 패스트볼 구속이 시속 140㎞대 초반으로 빠르지 않은데 공격적으로만 투구하니 타자들이 어렵지 않게 쳐냈다. 그는 "(경기 초반) 감독님이 빠르게 던지기도 하고 느리게 던지기도 하면서 변칙적으로 해보는 게 어떤지 물어보셨다"며 "조언을 듣기 전에는 구위가 나쁘지 않은데 '왜 공략을 당할까'하는 고민을 했었다"고 돌아봤다.
타이밍에 변화를 주니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3회와 4회를 피안타 1개,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5회 전준우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해 4⅔이닝 4실점.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추진 못했지만, 팀 승리에 힘을 보탰다. 1, 2회와 3, 4회는 180도 다른 투수였다. 공격적으로 나오는 롯데 타자들의 타격 타이밍을 조금씩 무너트렸다. 손 감독은 "계속 2군에 있다가 갑자기 (1군) 선발을 맡았다. 5이닝을 채우지 못했지만 사실상 채운 거나 마찬가지"라며 "3~4회 (주자를) 견제하면서 타이밍을 조절하는 모습을 봤다"고 흡족해했다.
다음 등판 과제도 역시 '타이밍'이다. 손혁 감독은 "주자가 있을 때 (투구) 간격 조절을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한 번은 3초, 한 번은 5초에 던지거나 다리를 한 번 빼고 견제를 하는 것도 좋다"며 "견제는 주자를 잡는 목적도 있지만, 타자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다"고 활용성을 강조했다.
윤정현은 롯데전에서 '예방주사'를 맞았다. 두 번째 선발 등판은 3일 대전 한화전이다. 타이밍을 머릿속에 새긴 그는 "불펜 피칭을 하는데 밸런스도 나쁘지 않고 오히려 자신감이 더 생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