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3·토론토)의 정면 승부가 샬렌 필드의 강풍을 이겨냈다. 홈구장 첫 승리가 따라왔다.
류현진은 14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주 버팔로 샬렌 필드에서 열린 2020 미국 메이저리그(MLB) 뉴욕 메츠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8피안타 1실점을 기록했다. 시즌 다섯 번째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투구)였다. 탈삼진은 8개, 볼넷은 없었다. 토론토가 7-3으로 승리, 류현진이 시즌 4승(1패)을 거뒀다. 평균자책점은 3.19에서 3.00으로 낮췄다.
토론토 타선은 다득점을 지원했다. 0-1로 뒤진 2회 말 루어데스 구리엘이 투런 홈런을 쳤고, 2-1이었던 6회 말에는 빅이닝(5득점)을 만들었다. 시즌 26승20패를 기록한 토론토는 아메리칸리그 6위, 동부 지구 2위를 지켰다.
류현진은 홈구장 샬렌 필드에서 등판한 종전 3경기에서 승전이 없었다. 평균자책점(3.18)은 나쁘지 않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환경 영향도 있었다. 이리(Erie)호 연안에 위치한 샬렌 필드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류현진은 8월 12일 이 구장에서 첫 경기를 치른 뒤 "바람 영향이 크기 때문에 좌측 타구는 장타를 허용할 확률이 높다. 타구가 오른쪽으로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류현진은 지난 8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1회에만 우타자 좌월 홈런 2개를 허용했다. 당시 류현진은 몸쪽 패스트볼이 연달아 공략당하자 체인지업 구사율을 크게 높였다.
메츠전을 치르는 동안 초속 8.49m 강풍이 불었다. 양키스전(초속 7.15m)보다 더 거셌다. 류현진의 유니폼 하의는 경기 내내 펄럭거렸다. 악조건 속에서 상대 타선의 기세도 매서웠다. 메츠 타자들은 경기 초반부터 간결한 스윙으로 류현진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공략했다. 1회 초 선두타자 제프 맥네일이 우전 안타를 만들어냈고, 1사 1루에 나선 토드 프레이저도 체인지업을 중전 안타로 연결했다. 1사 1·2루에서 상대한 도미닉 스미스에게 던진 커브가 중전 안타로 이어지며 1점을 먼저 내줬다.
1회는 좌측 장타를 의식했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구종(체인지업·커브)을 결정구로 구사해 땅볼을 유도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메츠 타선의 노림수에 고전하자, 류현진은 2회부터 기민하게 공 배합을 바꿨다. 빠른 공 계열인 포심, 투심, 컷 패스트볼(커터) 구사율을 늘렸다. 2회와 3회는 체인지업을 구사하지 않았다. 힘으로 맞붙었다는 얘기다. 경기 초반 메츠 타선에 고전했으나, 공 배합을 공격적으로 바꾸며 효율적인 투구를 펼친 류현진. 사진=토론토 SNS 류현진은 3회 초 2사 1루에서 상대한 토드 프레이저와의 승부를 기점으로 안정감을 되찾았다. 통산 217홈런, 장타율 0.449를 기록 중인 강타자와 정면승부 끝에 삼진을 솎아냈다. 볼카운트 3볼-1스트라이크에서 시속 90.3마일(145.3㎞) 몸쪽(우타자 기준) 높은 포심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한 뒤, 풀카운트에서 몸쪽 낮은 코스로 들어간 포심 패스트볼로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바람은 여전히 많이 불고 있었지만, 우타자의 허를 찌른 것이다.
타이밍 싸움을 위한 선택지는 커브 한 가지로 좁혔다. 대신 로케이션으로 타자의 눈을 현혹했다. 일단 포수 머리 높이에 투심 패스트볼이나 커터를 보여준 뒤 낮은 코스에 빠른 공을 꽂아 넣는 패턴을 활용했다.
토론토가 2-1로 앞선 4회 초 1사 1·2루에서 류현진은 2회 좌중간 2루타를 허용했던 브랜든 니모를 상대했다. 역전 주자를 둔 상황에서 볼카운트(3볼-1스트라이크)까지 몰렸다.
이 경기의 최대 고비에서 류현진은 정면승부를 택했다. 좌타자 몸쪽으로 커터를 보여준 뒤 바깥쪽 낮은 스트라이크존에 걸치는 시속 91.5마일(147.3㎞) 투심 패스트볼를 구사해 루킹 삼진을 잡아냈다. 앞서 니모와의 2회 승부에서는 바깥쪽 커터를 던져 좌중간 2루타를 맞았다. 다음 승부에서는 같은 코스에 다른 공을 던져 이겼다. 강풍을 뚫어낸 직구였다.
류현진은 이날 투구수 92개를 기록했다. 체인지업 구사율은 15.2%(14개)였다. 8일 양키스전(41%)과 비교하면 크게 줄었다. 주무기를 버렸지만, 정교한 제구력과 수 싸움을 앞세워 MLB 팀 타율 1위(0.278)를 달리는 메츠 타선을 이겨냈다. 빠른 공의 위력이 높아지자 체인지업도 다시 통했다. 5~6회는 모든 구종을 두루 구사해 연속 삼자범퇴를 만들었다.
경기 뒤 류현진은 "1회 이후 패턴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직구나 커터를 많이 사용하면서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은 것이 6회까지 끌고 간 요인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오면 원래 계획을 바꾸면서 경기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은 "경기 중에 (경기 운영) 계획을 바꾸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다"며 에이스의 능력을 극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