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많은 한국인들이 영국을 방문했다. 특히 축구팬들은 여행도 하고,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현장에서 즐길 목적으로 영국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많은 여행객이 영국을 찾을 것이다. 그들 을 위해 영국 펍(pub)에서 생존하는 법을 소개한다.
영국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펍은 단순한 술집이 아니다. 펍은 그들의 삶과 깊숙이 연결돼 있고, 동네 사랑방 같은 기능을 한다. 보통 오전 11시에 열어 밤 11시에 문을 닫는 펍에서 영국인들은 지인과 대화하고 식사하며, 휴식을 취한다. 한 자리에서 수십 년 동안 운영중인 펍도 매우 많고, 심지어는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펍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로 치면 조선 시대에 세워진 주막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이다.
펍은 영국 문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조지 오웰 같은 세계적인 문학가들은 펍에서 집필 활동을 하거나, 사색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대영박물관 열람실에서 연구하며 『자본론』 등을 집필한 칼 마르크스도 펍 애호가였다. 애주가였던 그는 옥스퍼드 스트리트와 토트넘 코트 로드의 많은 펍에서 시민들과 논쟁을 즐기곤 했다. 리버풀 출신의 밴드 비틀즈도 공연 후에 자신들의 아지트인 펍에 들러 맥주로 목을 축였다.
영국 문화와 일상을 가까이 경험할 수 있는 펍을 방문해보자. 특히 축구팬이라면더욱더 펍을 가야 한다. 왜 그럴까.
2019~20시즌 프리미어리그 경기장 관중의 약 75%는 시즌 티켓 보유자였다. 따라서 일반 팬이나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이 25% 남은 티켓을 사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러다 보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아스널 같은 유명 팀들 간의 경기 티켓을 구하는 건 너무나 어렵다. 돈도 많이 든다.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보고 싶다면, 토트넘과 비 인기팀의 경기 티켓을 노리는 게 현실적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 않다. 여러분이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에 토트넘이 홈에서 비인기 팀과 경기를 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트넘 경기 스케줄과 여행 일정을 맞춰야 한다. 축구장 입장권도 사전에 구입해야 한다.
모든 팬이 이렇게 계획적이지는 않다. 런던까지 갔는데, 토트넘 경기를 직접 못 본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팬도 있을 것이다. 경기장에는 못 들어가도 가장 현장의 분위기를 느끼기 좋은 방법은 바로 펍에 가는 것이다.
보통 펍에는 특정한 드레스 코드가 없다. 하지만 도심에 있는 펍이나 멋쟁이들이 넘쳐나는 곳에는 저녁 시간대에 입구에 덩치가 좋은 ‘기도’들이 서 있다. 바운서(bouncer)라고 불리는 이들을 보면 주눅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당당히 들어가라.
물론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차려입어야 한다. 아웃도어, 청바지, 운동화, 짧은 바지 등을 입으면 입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으니 여권도 준비하자.
아마 여러분은 런던에 도착해 손흥민 선수 이름이 새겨진 토트넘 셔츠를 살 것이다. 흥분한 나머지 계속 그 옷만 입고 다닐 수도 있다. 펍에서는 축구 팬도 클럽 셔츠를 입는 경우가 드물다. 운이 나쁘다면 아스널 등 다른 클럽의 팬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펍의 위치도 중요하다. 아스널 구장 근처의 펍에 토트넘 셔츠를 입고 들어가면 안 된다. 또한 토트넘 셔츠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관광객으로 보일 것이다. 관광객은 티가 안 날 수가 없지만, 가능하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게 좋다.
펍에 막상 들어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울 수 있다. 앉는 것을 선호하는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가서 앉을 것이다. 하지만 펍은 바에서 주문해야 한다. 테이블에 아무리 오래 앉아 있어도 물 한 잔 마실 수 없다.
주문하기 위해 바에 가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만약에 바텐더가 한가롭게 있다면 “excuse me(실례합니다)”라고 말하며 주문을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일하고 있는 바텐더를 부르거나 손짓을 하면, 다른 사람의 차례를 가로챈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행동을 하면 “기다리라”는 다소 냉정한 말을 들을 것이다. 아니면 바텐더가 고의로 여러분을 더 기다리게 할 수도 있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바쁜 시간의 바에는 바텐더가 머릿속에 생각하는 순서가 있다. 따라서 바에 가면 바텐더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 그리고 좀 기다리다 보면 바텐더가 다가와서 주문을 받는다.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은 절대 가지면 안 된다.
펍은 다양한 음료를 판매한다. 가장 많이 팔리는 음료는 역시 맥주다. 병맥주보다 맛이 더 좋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맥주(draught beer)를 사람들은 주로 마신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맥주를 달라고 하면 여러분이 식당에 가서 “아무 음식이나 주세요”라는 말과 같은 황당한 주문이 된다.
펍에는 기본적으로 라거(lager), 에일(ale)과 스타우트(stout) 등 세 가지 종류의 맥주를 서빙한다. 라거는 하면발효방식으로 생산하여 저온에서 일정기간 숙성시킨 맥주를 말한다. 국내에서 전통적으로 마셔온 맥주가 바로 라거다.
라거는 다시 페일(pale), 앰버(amber)와 다크(dark)로나누어진다. 세계인이 가장 많이 마시는 맥주는 페일 라거다.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라거는 현재 잉글랜드 맥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사랑받는 맥주는 에일이었다. 상면발효방식으로 생산되며 색이 짙고 쓴 냄새가 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에일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페일 에일에 속하는 비터(bitter)는 20세기에 들어 큰 인기를 얻으며 ‘잉글랜드의 국민 음료 (the national drink of England)’로 불렸다. 쓴맛이 나고 썹씨 11~14 온도로 서빙되는 비터에 한국인들은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몇 번 마시다 보면 비터만 찾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