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대표팀 김지현(왼쪽)과 올림픽팀 송민규가 손을 맞잡고 선전을 다짐하고 있다. 두 선수는 K리그 활약으로 벤투팀과 김학범 팀애 각각 승선했다. 김민규 기자“처음이라서 겁나냐고요. 그런 건 없어요. 꿈꿨던 순간이 현실이 돼, 오히려 설레고 기대됩니다.”
긴장해서 머뭇거릴 줄 알았는데, 두 사람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나란히 난생처음 태극마크를 단 공격수 김지현(24·강원FC)과 송민규(21·포항 스틸러스)를 5일 파주 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지현은 파울루 벤투(51·포르투갈) 감독의 대표팀(A팀)에, 송민규는 김학범(60) 감독의 올림픽팀(U-23 팀)에 각각 뽑혔다. 대표팀과 올림픽팀은 9, 12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평가전을 치른다. 코로나19로 국제경기가 어렵게 되자 대한축구협회는 양 팀의 평가전을 마련했다.
두 선수 발탁은 이번 대표팀과 올림픽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이다. 양쪽 모두 청소년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뛰었던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선수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두 선수는 연령대별 대표선수 경력이 전혀 없다. 흔치 않은 경우다. 오직 올 시즌 K리그 활약으로 감독을 사로잡았다.
연령별 대표 경력 등 이렇다 할 ‘스펙’ 없이 태극마크를 달게 된 건 ‘개천 용’의 자수성가인 셈. 팬들은 두 선수에게 ‘흙수저 브라더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송민규는 “‘흙수저’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축구를 시작할 때부터 대표팀을 바라보며 뛰었다. 늦게라도 꿈을 이뤄 영광”이라고 말했다. 김지현은 “오래 시간이 걸린 만큼 자부심이 크다”고 말했다.
프로 3년 차 김지현은 대학(한라대) 시절까지 무명 공격수였다. 2018년 강원에 입단했는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데뷔 시즌 3골(12경기). 그는 매일 팀 훈련 외에 슈팅 300개씩 개인 훈련을 했다. 힘을 키우려고 밥도 2인분씩 먹었다. ‘흑돼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지난해 ‘킬러 본능’이 깨어났다. 10골·1도움(27경기). K리그 특급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영플레이어상(신인왕)까지 차지했다. 올해도 7골(국내 선수 4위)·2도움(23경기)으로 활약했고, 벤투 감독 레이더에 잡혔다.
최전방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는 왕성한 활동량과 간결한 공격 마무리가 강점이다. 베테랑 이정협(29·부산 아이파크)이 대표팀에서 김지현의 포지션 경쟁자다. 김지현은 “파주 NFC에 견학하러 온 게 아니다. 수험생의 마음으로 잘 준비하겠다. 기회가 오면 반드시 골을 넣겠다. 김지현 이름 석 자를 팬들 머리에 각인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송민규는 올 시즌 K리그에서 가장 빛나는 신예다. 2018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 2골·3도움(27경기)을 기록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다진 체격 덕분에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그는 올해 10골(국내 2위)·5도움(24경기)으로, 일류첸코(15골·5도움)와 함께 포항의 공격 원투펀치를 맡고 있다. 무엇보다 영플레이어상 0순위다. 과감한 측면 돌파가 돋보이고, 동료와 연계 플레이도 좋다. 무엇보다 어린 선수인데도 기회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다. 공격수로는 크지 않은데도(키 1m79㎝) 헤딩골이 많다. 김학범 감독은 “어린데도 대범한 플레이를 펼친다”고 평가했다.
송민규는 “지난 시즌 영플레이어상 수상자인 지현이 형처럼 되는 게 목표다. 올해 기회가 왔다. 인생에 딱 한 번인 영플레이어상을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팀에서는 김대원(23·대구FC), 엄원상(21·광주FC), 오세훈(21·상주 상무), 조규성(22·전북 현대) 등 붙박이 공격수들과 경쟁해야 한다.
송민규는 “공격수는 항상 골을 욕심낸다. 지금이 능력을 보여줄 때다. 감독님 주문에 따라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 한 방을 보여주겠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김지현은 “민규는 특급 신예 이상의 실력을 갖췄다. 대표팀 첫 발탁이라도 걱정 안 한다. ‘흙수저 브라더스’가 나란히 골을 터뜨리면 좋겠다”며 송민규를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