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광활한 M자형 이마를 드러낸 보안사령관 전두혁, 영화 '독전'에서 조진웅이 이끄는 마약 수사팀 형사 정일,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은에게 일방적으로 쏘아대는 상무 앞에서 "제가 좋아합니다"라고 고백해 분위기를 싸하게 한 안전진단 3팀의 송과장. 이 모든 캐릭터를 배우 서현우가 연기했다. 체중과 헤어 스타일 등 비주얼의 변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어투와 톤으로 금방 다른 사람이 되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필모그래피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 작품에서 이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라는 반응이 저절로 나온다. 애드리브인지 대본에 있는 대사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럽게 툭 내뱉는 연기도 그의 특장점이다.
최근 종영한 '악의 꽃'에서 데뷔 10년 만에 첫 주연을 맡아 마음껏 연기를 펼쳤다. 자유분방하고 자기중심적인 사회부 기자 무진 역을 분했다. 마음껏 연기할 캐릭터를 주고, 판을 펼쳐놓으니 이준기와의 브로맨스를 만들어내며 활약했다. '신 스틸러' 보다는 신을 빈틈없이 꽉 채우는 유연하고 잠재력이 많은 배우다.
-호평 속에 '악의 꽃'을 마친 소감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많았다. 드라마 중간에 내 (연기와 관련된) 기사가 나와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걸리고 이슈가 된 건 처음이었다. 현장에서 처음 겪는 일도 많았다. 예전에는 내 연기랑 캐릭터만 생각하고 내가 어떻게 연기해야하는지만 급급했는데 이번에 같이 연기한 (이)준기 형을 보면서 연기 외적으로도 중요한 게 많다는 걸 알았다. 현장을 끌고 가는 힘과 현장 분위기를 좋게 메이킹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스태프와 소통하는 방식도 배우면서 그런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또 연기에도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다. 예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배우 이준기와의 호흡은 어땠나. "준기 형은 연기하면서 한 번도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본 적 없는 배우였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긴장을 많이 했는데 형이 의외로 털털하고 편한 분이었다. 연기적인 부분을 소통할 땐 대학 동기처럼 편했다. 많은 분이 준기 형과의 브로맨스 케미(스트리)에 대해 얘기해줬는데 대화를 많이 하면서 연기를 해서 그런 게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
-극 중 맞는 장면이 많았다. "때리는 입장이 더 쉬운 거더라. 액션은 하는 것 보다 받는 게 더 어려운 것 같다. 맞는 액션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액션 부심이 있는 이준기 형이 정말 디테일하게 알려줬다. 무술팀 수준으로 액션을 잘해서 어떻게 하면 안 다치게 액션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줬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형 덕분에 크게 어려움 없었던 것 같다."
-'악의 꽃'은 첫 주연 드라마다.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것 같은데. "데뷔한 지 10년 됐다. 드라마에서 짧게 스쳐 지나가는 역할도 해보고 상업영화에서 단역, 조연 다양한 걸 했는데 이번 작품은 그 모든 작품과 시간을 중간 결산하는 느낌이었다. 김무진 캐릭터는 하나의 성향을 가진 게 아니라 변화무쌍한 역할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태도도 바뀌었다. 다양한 역할,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는데 지난 10년 동안 구축한 역할이나 연기의 질감을 김무진에게 투여해본 시간이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다. 내 연기도 체크해보면서 지난 10년을 돌아보게 해준 작품이고, 굉장히 특별한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전작과 비슷하거나 겹치는 캐릭터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캐릭터로 항상 도전하는 이유가 있나. "배우는 많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배우에 대한 내 기준이자 가치관이다. 편한 방식으로 연기하는 걸 스스로 못 견디는 것 같다. 한 가지 일을 몇 년 이상 하다 보면 편한 방식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안일하고 안정적인 방법은 경계하는 편이다. 또 평범한 외모라 분장이나 체중의 변화에 따라 이미지가 바뀌는 편인데 그 부분을 다행스럽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떤 작품에서 뭘 했는지 많이 못 알아보는 게 단점이면서도 굉장한 장점인 것 같다."
-연기 호평이 이어졌고 반응이 좋아서 '악의 꽃' 방영 중, 그리고 종영하고 러브콜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몇 군데 연락이 왔는데 '악의 꽃'을 하는 동안엔 작품에 올인하고 싶어서 (차기작에 대한) 생각은 안 했다. 작품이 끝난 지금 시점에선 향후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중요한 시기를 맞이한 것 같다. 어떤 작품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기를 보여줘야 할지 고민 중이다. 센 캐릭터를 할지, 좀 밝은 캐릭터나 작품을 할지 고민하고 있다."
-지금의 서현우를 있게 한 작품을 꼽아 본다면. "영화 '그놈이다'는 체중을 23kg이나 찌워서 외형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시도한 작품이다. '나의 아저씨'는 연기 앙상블에 대한 이해를 심어준 작품이다. 내 연기가 튀려고, 이 작품에서 살아남으려고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신을 채우는 연기가 뭔지를 알게 해준 작품이다. 또 드라마를 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서도 감동한 작품이다. 영화 '배심원들'은 분장 적으로 극적인 경험을 한 작품이다. 양손에 엄지손가락 밖에 없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연기 했는데 그 역할과 작품 덕분에 (연기)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무명 생활이 꽤 긴 편이었다. 버티는 힘, 원동력은 어디서 왔나. "힘든 시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심각하게 힘들 때도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든 순간도 있었다. 오디션을 보고 채워지지 않는 연기의 갈망, 욕구가 있었는데 그런 건 사실 무대에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카메라 앞에서 분량적인 욕심도 무대에서 풀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공연계가 힘든데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서 다시 무대 공연 예술이 힘든 시기를 이겨냈으면 좋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1~2년 안에 한두 작품씩 꼭 연극을 하고 싶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tb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