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역세권 청년주택. 연합뉴스 제공 올해 서른넷 직장인 A 씨의 목표는 향후 5년 이내에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현재 부모와 거주 중인 그는 당장에라도 나와서 살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상승세인 전∙월세 가격을 보면서 "당분간 캥거루족 신세를 면치 못할 것 같다"고 한숨 쉬었다. 그런 그에게 "시에서 운영하는 청년주택을 알아보라"고 하자 이런 답이 되돌아왔다. "인기있는 곳은 월세만 60만원이라던데요? 보증금도 상당하고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청년주택인가 싶어요. 청년보고 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신혼부부 민간임대 청년주택(전용 37.17㎡)은 보증금 1억3760만원에 월세 66만원이었다. 임대보증금을 조정하면 부담금이 더 높다. 보증금을 3060만원으로 낮추면 월세를 108만원 내야 한다. 이는 인근 마포한강푸르지오2차(전용 25.49㎡·보증금 1000만원, 월세 105만원)나 명지한강빌드웰(전용 32.99㎡·보증금 1000만원, 월세 75만원) 수준에 육박하거나 넘어서는 가격이다. 구의동 신혼부부 민간임대 청년주택은 보증금 1억509만원, 월세 42만원에 달했다.
월세가 높다 보니 고소득 청년들이 청년주택에 입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5월과 6월 입주자 모집 절차를 실시한 서울 강서구 등촌동 청년주택(아임2030)은 특별공급을 통해 80명의 입주자(당첨자)가 선정됐다. 그런데 입주자 80명 중 월 소득 300만~400만원인 사람은 9명, 400만~500만원인 사람은 2명이었다. 월 소득 500만원(500만~550만원)이 넘는 연봉 6000만~8000만원 사이의 고소득자 1명도 특별공급을 통해 입주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25~29세 청년의 월평균 소득은 237만원, 30~34세 청년의 월평균 소득은 299만 원이었다.
고소득자도 청년주택에 입주할 수 있는 건 느슨한 기준 때문이다. 이 단지의 입주자 모집 공고문을 보면, 월평균 소득 666만5980원 이하(4인 기준)인 가구면 특별공급 신청이 가능하다. 연봉 7000만~8000만원의 고소득자도 입주 가능한 셈이다.
서울시 청년주택은 서울시가 청년·신혼부부 주거 안정을 위해 내놓은 정책이다. 하지만 높은 임대료와 느슨한 기준으로 정작 입주해야 할 취약 청년층이 밀려나는 형국이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은 "임대료도 고소득자 아니면 감당 못 할 비싼 임대료를 책정해 오히려 주거 취약계층을 소외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병훈 의원은 "서울시가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시행자에 토지 용도변경과 용적률 상향 등 엄청난 특혜를 제공했지만, 청년주택은 주변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공급돼 젊은이들이 외면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임대료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